‘본다는 것’에 얽매여 놓치고 지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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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대화’ 체험전 시각 아닌 감각들 살아나

사진 제공 NHN 소셜 엔터프라이즈
사진 제공 NHN 소셜 엔터프라이즈
그는 방금 숲 속을 산책한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묻는다. “뭐 특별한 게 없었다”고 답하는 친구.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자신은 촉감만으로도 나무 이파리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사흘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무엇을 할지 하나하나 꼽아 보았다. 자신을 가르쳐준 선생님의 얼굴,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 그리고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모습 등.

헬렌 켈러의 이야기다. ‘어둠 속의 대화’는 헬렌 켈러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것을 날마다 누리고 사는 이들에게 깨우침을 선사하는 참여형 체험전이다. 8명씩 한 팀을 이룬 관람객들은 하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로드 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90분 동안 한 점 빛도 없는 깜깜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처음 들어설 때 불안감과 공포가 머릿속을 스쳐가지만 벽을 손으로 더듬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는 데 차츰 익숙해진다. 숲과 시장을 돌아다니고, 큰 길을 건너서 카페에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고, 보트를 타면서 눈을 제외한 몸의 나머지 감각이 예민하게 되살아난다.

이 전시를 시각장애에 대한 간접 체험으로만 좁게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90분의 여정 속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시도와 도전에 직면하고 막바지에 ‘반전’을 만나며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인간이 ‘눈으로 본다’는 사실에 얽매여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편견에 사로잡혀 사는지를 가르쳐주는 전시다.

1988년 독일에서 실명한 친구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비장애인을 위한 체험전 형태로 발전했다. 150개 도시에서 약 600만 명이 완전한 어둠을 경험했다. 서울에는 2007년 처음 선보였고 올해 초 세계에서 10번째로 상설전시장이 문을 열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버티고타워 9층에 마련된 전시장은 장애인표준사업장인 NHN 소셜 엔터프라이즈가 운영한다. 관람료는 2만∼3만 원. 공식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등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월요일 휴관. 02-313-997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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