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0]재야의 文才들 “이젠 작가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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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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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은 없다”
환갑 넘긴 ‘문학소녀’
10년 도전 ‘문학주부’

“행복한 외도”
놀이공원 직원 의상 디자이너
다채로운 이력 뿌리 깊은 내공

2010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한영광의얼굴들이서울광화문광장세종대왕동상앞에서작가로서의힘찬도약을다짐했다.왼쪽부터박해성(시조),임나진(희곡),박은주(문학평론가작),전신우(동화),유지원(영화평론),정유경(중편소설),김미선(단편소설),유병록씨(시).시나리오당선자최영주씨는개인사정으로불참했다. 김미옥 기자
2010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한영광의얼굴들이서울광화문광장세종대왕동상앞에서작가로서의힘찬도약을다짐했다.왼쪽부터박해성(시조),임나진(희곡),박은주(문학평론가작),전신우(동화),유지원(영화평론),정유경(중편소설),김미선(단편소설),유병록씨(시).시나리오당선자최영주씨는개인사정으로불참했다. 김미옥 기자
누군가는 말을 잇지 못했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떨렸다. 또다른 누군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러 번 질문했다. “정말인가요? 정말 제가 당선된 건가요?”

2009년 12월 23일 오후,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동아일보사로 모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함께 등단한 이들과 준비과정, 당선 소감 등을 털어놓고 나서야 “이제야 당선한 게 실감난다”며 웃어 보였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자들의 면면은 연령대에서부터 직업군에 이르기까지 어느 때보다도 다채롭고 파격적이었다.

○ 20대 초반에서 60대까지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나이 든 신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시조로 등단한 박해성 씨(63), 단편소설로 등단한 김미선 씨(47) 모두 최근 보기 드문 만학도들이다. 두 작가 모두 결혼, 육아 등으로 본격적인 문학공부가 늦어졌다고 했다. 10년 가까이 등단을 준비했던 것도 공통점이다. 나이가 신춘문예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한 응모자가 많지만, 문학에는 정년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들은 입증해 보였다.

“나이 때문에 문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해요. 고령화 사회인 만큼 나이 든 사람들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좌표가 되고 싶습니다.”(박해성 씨)

“제 등단 소식에 주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어요. 10년을 붙들고 있더니 결국 되긴 되는구나 하는 반응들….(웃음) 젊은 사람보다 더 젊은 문제의식을 갖고 소설을 쓰고 싶어요. 40대야말로 정말 소설을 쓸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거든요.”(김미선 씨)

올해 최연소 당선자는 희곡 부문의 임나진 씨(24)다. 동국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임 씨는 “지도교수님과 친구의 독려 덕에 별 욕심 없이 응모했기 때문에 당선이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응모 이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대담함을 보였다. 당선 통보를 할 수 없었던 기자는 한동안 애를 태워야 했다.

○ 디자이너부터 대기업 사원까지

또 하나의 주요 특징은 문학청년들, 대학 문예창작학과 출신 당선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대신 다채로운 직업인들이 등단했다는 사실이다. 중편소설로 등단한 정유경 씨(31)는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한 의상 디자이너 겸 스타일리스트다. 현재 한 지방대에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그는 “문학엔 완전히 문외한”이라고 말했다. “그저 긴 글을 쓰는 게 너무 재밌어서 몇 년 전부터 무작정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장편만 너덧 편 이상 쌓였다”고 한다.

동화 당선자인 전신우 씨(36)는 삼성 에버랜드에 근무하는 회사원이다. 제주도 출장 중 뜻밖의 당선 통보를 받고 회의 중 난리가 났다고 한다. 전 씨는 “여섯 살배기 큰아들이 동화책을 읽어줘야지만 잠이 든다. 몇 년간 매일 밤 아들과 그림동화책을 들여다보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 지식 없이 썼던 것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평론으로 등단한 유지원 씨(29·본명 유종수) 역시 SK커뮤니케이션즈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대학시절 월간지 기자로 활동하며 영화평을 썼던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영화에서 자꾸 멀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돼 마음을 다잡고 썼다”며 “그저 심사평에 거론이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필명을 썼다”고 말했다.

○ 골방에서 묵묵히 수행해온 글쓰기

시로 등단한 유병록 씨(28), 시나리오로 등단한 최영주 씨(41) 역시 혼자 묵묵히 글쓰기를 계속해온 재야의 문재(文才)들이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유 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꾸준히 시를 썼다. 2005년부터 계속 응모했는데 올해 되지 않았다면 내년에, 또 그 후년에 계속 응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최 씨 역시 지역 도서관의 주부 독서토론회 등에 몇 번 나간 것이 전부일 만큼 체계적인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는 “‘02’로 시작되는 전화가 자꾸 오기에 카드나 보험회사 전화인 줄 알고 일부러 받지 않았는데 그게 당선전화일 줄 몰랐다”며 웃었다. 첫 응모로 문학평론 가작에 당선한 박은주 씨(26)는 이화여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 그는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일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 당선이) ‘다른 생각 말고 한번 해보라’는 격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당선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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