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예술로 바꾼 예언자… 아시아 최대 회고전”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팝아트의 제왕’과 만나다 |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展내일 개막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워홀의 추상 작품 ‘회상’(1982년). 어둠을 관통하는 무수한 빨강, 녹색, 파랑 선의 조합으로 빛과 색채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11m 길이의 실크스크린 작품이다.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워홀의 추상 작품 ‘회상’(1982년). 어둠을 관통하는 무수한 빨강, 녹색, 파랑 선의 조합으로 빛과 색채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11m 길이의 실크스크린 작품이다.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소콜로프스키 앤디워홀미술관장
그의 작품은 다가올 미래의 거울
시대 앞서간 멀티태스킹 선구자


○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
전통적 아름다움 개념 뒤집어
워홀 이후 미술사가 바뀌었다


“작품 배치와 벽면의 대담한 색채가 잘 어우러져 있다. 미니멀한 것보다 역동적인 것을 좋아했던 워홀의 정신을 되살려낸 훌륭한 전시다.”

9일 오후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의 개막을 앞두고 마무리 준비에 한창인 서울시립미술관을 둘러본 미국 피츠버그 앤디워홀미술관의 토머스 소콜로프스키 관장. 그는 ‘멋지다(Marvelous)!’는 감탄을 연발했다. 이 말에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워홀의 작품은 강한 에너지가 넘치고 전시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도 높아 전시 구성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을 둘러본 뒤 두 사람은 관장실에서 마주 앉았다.

―이번 전시의 특징과 의미는….

▽유희영=시립미술관은 샤갈전 등 여러 특별전을 개최했지만 이번 전시는 규모에서 가장 크다. 우리가 워홀미술관을 직접 방문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비롯해서 초기와 전성기, 말년에 이르는 대표작 110여 점(200여 피스)과 사진과 기록물 200여 점을 선별했다. 이런 대규모 회고전은 국내는 물론이고 동양권에서 처음일 것이다.

▽소콜로프스키=워홀은 방대한 작품을 남겨 전시마다 다른 면모를 조명할 수 있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현대 생활의 행복과 그늘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워홀은 “미래에 모든 사람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의 작품은 순식간에 명성을 얻거나 사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 즉 변화란 어느 순간에도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미술에서 워홀은 어떤 작가로 평가되나.

▽소콜로프스키=그는 광고, 포장, TV, 포스터 등 현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예술과 접목했다. 예전 사람들이 점심식사로 즐겨 먹던 생선과 과일을 그린 것이 마네 시절 정물화라면, 워홀은 코카콜라와 치킨수프로 바뀐 현대의 정물을 그렸다. 그런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앞서 시대 변화를 통찰한 20세기의 위대한 아티스트였다. 워홀의 작품은 이 시대의 거울, 또한 다가올 미래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12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을 공들여 준비해온 두 주역인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왼쪽)과 토머스 소콜로프스키 미국 앤디워홀미술관장. 김재명 기자
12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을 공들여 준비해온 두 주역인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왼쪽)과 토머스 소콜로프스키 미국 앤디워홀미술관장. 김재명 기자

▽유=동감이다. 워홀은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벽을 허물어 전통미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이 전통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팝아트의 선구자 워홀은 이런 개념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미술이고, 누구나 미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일상용품을 당당히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메릴린 먼로 같은 대중 스타의 이미지를 대형 팝아트 작품으로 찍어낸 것은 가장 미국적 삶을 소재로 한 상업적 미술이라 할 수 있지만 워홀은 이를 예술로 격상시킨 점에서 파격적이라 하겠다. 워홀 이후 미술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사후 22년이 지났어도 그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는 이유는….

▽소콜로프스키=주제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콜라를 마시고, 롤링스톤스를 듣는다. 초상화를 그려준 스타의 인기도 여전하다. 그가 선택한 사람과 아이디어는 아직도 통용된다.

▽유=생전에도 그는 슈퍼스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명성과 부를 그만큼 누린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가 다룬 일상용품, 스타의 이미지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고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종전까지 인정받지 못하던 일상적인 것, 상업적인 것을 예술이라고 들고 나온 그는 결과적으로 시대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해석하고 그 흐름을 주도했다. 이것이 작가로서 주목받고 사랑받을 만한 천재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뿐 아니라 음반프로듀서, 영화제작, 잡지발행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는데….

▽유=영화도 여러 편 찍고 1969년 잡지 ‘인터뷰’를 창간하는 등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이 잡지는 유명인사가 또 다른 유명인사를 취재하는 흥미로운 진행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반에도 참여하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콜로프스키=예술적 충동이 있다면 장르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본보기를 남긴 것이다.

―스타가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가발을 쓴 자화상도 그렇고 워홀은 실제 모습을 드러내기 꺼렸다. 그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소콜로프스키=워홀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보려는 것은 무리 아닐까. 메릴린 먼로 같은 스타처럼 본명(앤드루 워홀라) 대신 워홀이란 이름을 사용했던 그는 대중이 유명인사의 겉 이미지만 추종할 뿐 실제 삶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은 끝까지 드러내지 않았다.

▽유=그는 항상 전위적 형태의 파티를 즐기면서도 주일마다 예배를 보러 가고 자신의 예술적 삶에 열정을 다했다. 또한 대단한 수집광이어서 늘 책상 언저리에 상자를 놓아두고 흥미로운 것이 생기면 담아 두었다. 이를 타임캡슐이라고 불렀는데 600여 개를 헤아린다. 전시에서는 타임캡슐 섹션을 따로 만들어 개인적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흥미롭게도 여러 색깔과 모양의 가발을 쓰고 다닌 워홀은 대머리였다. 전시에선 그가 애용했던 가발과 안경, 재킷 등 유품도 선보인다.

▽소콜로프스키=맞다, 나처럼 그도 대머리였다(웃음). 10대 때부터 머리가 빠졌던 그는 이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했다. 첫 미술관 전시에서 관객이 가발을 낚아채 도망갔을 때 그는 화장실에 숨어 가발을 찾아올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가족이 방문할 때도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는 전화 통화를 즐기고 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지만 휴대전화와 블로그에 집착하는 요즘 사람들과는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소콜로프스키=멀티태스킹의 선구자이자 자신을 어떻게 알리고 마케팅해야 하는지를 알았던 워홀. 현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그의 작품은 세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공감대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유=워홀은 현대미술의 틀을 바꾸어놓은 예언자 같은 작가였고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워홀의 삶이자 아방가르드였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열어놓은 그의 예술이 국내 관객에게도 큰 감동과 충격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관람 안내


기간=12일∼2010년 4월 4일
장소=서울시립미술관
입장료=성인 1만2000원, 청소년 1만 원, 어린이 8000원
문의= 전시사무국 02-548-8690
‘최후의 만찬’(1986년)
‘최후의 만찬’(1986년)
■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

이번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 미술관이 좀처럼 해외에 내보내지 않는 작품들을 다수 선보인다. 예컨대 그가 20대 시절에 그린 드로잉과 불빛에만 반응하는 특수 안료를 사용한 ‘최후의 만찬’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그림 실력이 부족해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빼어난 드로잉을 보면 그런 편견이 절로 사라진다. 따로 암실을 만들어 전시하게 될 ‘최후의 만찬’은 미국 뉴욕의 밤 생활을 즐겼던 워홀이 나이트클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구상 작가로 알려진 워홀이 탐구했던 다양한 추상적 경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미술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국내에는 워홀의 추상작품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번 전시에선 ‘오줌 페인팅’으로 알려진 ‘산화’, 11m 길이의 ‘회상’,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탐구한 ‘그림자’ 시리즈가 나온다.

‘산화’는 구리 성분을 캔버스에 바른 뒤 지인들에게 소변을 보게 해 산화를 유도한 작품이다. 얼핏 치기어린 작품으로만 보이지만 오줌을 활용한 제작방법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존재했다. 미켈란젤로 등 당시 조각가들은 브론즈 조각을 만든 뒤 표면에 변화를 주기 위해 오줌에 담갔다 꺼내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가볍고 경쾌한 팝 아트를 주도한 워홀이 미술사 전반을 꿰뚫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