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작품으로 ‘통일 방아쇠’ 당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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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0주년. 한국 문학계에선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도, 분단문학에 대한 열정도 시들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이응준 씨(왼쪽)가 “작가로서 허탈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자 이호철 씨는 “이럴 때일수록 문학이 생동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열기가 필요하다”고 독려했다. 안철민 기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0주년. 한국 문학계에선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도, 분단문학에 대한 열정도 시들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이응준 씨(왼쪽)가 “작가로서 허탈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자 이호철 씨는 “이럴 때일수록 문학이 생동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열기가 필요하다”고 독려했다. 안철민 기자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우리 시대 분단문학은
소설가 이호철-이응준 씨 대담


《1989년 11월 9일, 동서독을 갈랐던 장벽이 사라졌다. 분단이 진행 중인 우리로서도 그 감격은 멀지 않게 느껴졌다. 20년이 지났지만 남북한의 상황은 당시와 다르지 않다. ‘탈향’ ‘판문점’ 등을 통해 평생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문학의 주제로 천착해 온 원로소설가 이호철 씨(77)와 남북한 통일 후 사회를 형상화한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올해 발표한 이응준 씨(39). 세대도, 삶의 경험도 서로 다른 두 작가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만나 분단문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뜨거운 작품으로 ‘통일 방아쇠’ 당겨야” ―남북 분단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을 지켜보는 소회가 어떠십니까.

▽이호철=동서독 경계가 무너진 직후 동아일보 주관으로 휴전선을 방문해 기고를 했다. 그때 봤던 북쪽 산천이 눈에 선하다. 바로 어제 같은데 20년이 지났다니….

▽이응준=그해 스무 살이었던 나는 독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그 직후인 1990년부터 2년간 독일에 체류했다. 마흔이 된 올해 통일 이후 남북한 사회를 그린 소설을 발표해 나름 감회가 있다.

▽이호철=당시 우리도 굉장한 흥분과 기대감에 싸였다. 그러나 과연 남북한 관계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기대만큼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응준=20년 전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염원은 ‘당위적’이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독일의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통일에 대한 시각도 변한 듯하다.

―내년으로 6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분단문학의 의미와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응준=한국문학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분단문학이었던 건 틀림없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과 아픔을 견딘 선배들의 문학에 존경심을 갖는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난 뒤 전 세계가 한반도의 비극에서 기대했던 엄청난 걸작이나 전쟁문학이 나왔는가. 개인적으로는 통일 이후를 그린 문학이 60년간 한 편도 없었다는 데 놀라기도 했다.

▽이호철=시대 상황으로 인해 남북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작품은 1987년 이후에나 가능했던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이 나오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작이 아니더라도 남북관계나 통일사회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을 오늘날에도 문학적 목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분단국가의 작가로서 민족과 시대의 아픔을 문학을 통해 어떻게 형상화하고자 했습니까.

▽이응준=선생님께선 몸으로 겪으신 남북 현대사를 글로 쓰셨으니 얼마나 아프셨겠는가. 우리는 그것을 체험할 수 없지만 그 대신 통일 이후를 대비하고 바라봐야 할 세대다. 과학적인 분석과 실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남한은 통일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됐으며 북한 체제의 실상은 어떤 것인가를 바로 알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호철=체험 없이 상상으로만 접근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시도엔 걱정도 된다. 과학적인 접근, 논리… 맞는데, 좀 섭섭하다. 아프고 열의가 있는 것, 그런 게 문학이지 않은가. 나는 열여덟에 월남한 뒤 분단의 시대를 맨몸으로 살아야 했다. 내 문학이 탈향에서 귀향,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여정인 것은 그것이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부산에서 함북 웅기까지 가는 표를 살 수가 있었고 남북은 공통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북한을 ‘아주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통일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응준= 남북 문제에 대한 열정은 지금 세상에서 감흥이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는 게 나도 안타깝다. ‘국가의 사생활’은 그래서 가능한 한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통일 이후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골치아파하는 분위기를 깨자는 것이 이 작품의 목표 중 하나였다.


―앞으로 남북관계를 위해 문학이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이호철=개인으로서는 드센 삶이었지만 남북관계가 있는 한 쓸 거리가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분단은 언제든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거기엔 문학이 기여할 몫이 분명 있다. 뜨거운 작품을 써서 변화를 끌어내는 것, 그게 문학의 힘이다.

▽이응준=작가가 가져야 할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분단국가는 예술가에게 나쁜 지형이 아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위험한 나라와의 대치’란 극한 사회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작품을 발표하느냐는 작가의 페이소스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이호철=굳이 통일이란 무거운 용어를 쓰지 않아도 만나는 이들과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되는 것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6월에 분단문학포럼 주최로 ‘단편소설페스티벌’을 열며 분단문학, 민족문학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있다는 데 놀랐다. 문학이 이런 수준에서 힘을 발휘해 나갈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싶다.

▽이응준=분단의 아픔을 말씀하시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선생님을 뵈니 내가 너무 차가워진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너무 과학, 너무 논리 하지 마라”는 말씀도 새겨두려 한다. 독일이 그랬듯 우리의 통일도 우리가 바랄 때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베를린 장벽 붕괴 같은 격변이 언제쯤 올지 궁금증이 든다. 더 고민해보고자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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