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760>貧而無怨은 難하고 富而無驕는 易하니라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려워도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쓴 글씨에 ‘貧而無諂(빈이무첨) 富而無驕(부이무교)’가 있다. ‘논어’의 ‘學而(학이)’에서 子貢(자공)이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으면 어떤가요”라고 물었던 말에서 따왔다. 그때 공자는 “그것도 괜찮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함만 못하다”라고 했다. 안중근 의사는 ‘貧而樂(빈이락) 富而好禮(부이호례)’의 정신태도를 자부하지 않고 처지에 충실하면서 인간다움을 실천하고자 했기에 그런 遺墨(유묵)을 남겼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심리 상태가 달라진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장)에서 공자는 그 사실을 직시하되 가난하되 원망하지 말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憂患(우환)이 몸에 절실하므로 마음을 편히 갖기 어렵다. 그래서 ‘貧而無怨은 難하다’고 했다. 이에 비해 부유한 사람은 환경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므로 마음을 조종해서 교만한 기운을 억누르기 쉽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富而無驕는 易하다’고 했다.

하지만 공자의 의도는 환경과 인간심리의 관계를 원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았다. 부유한 사람이 교만한 기운을 억누르기 쉬운데도 불구하고 잘못을 범한다는 사실을 들어 그들을 꾸짖은 것이다. 漢(한)나라의 疏廣(소광)은 부자가 남의 어려운 처지를 모른 체하면 남들의 원망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富者衆怨(부자중원)’이라 했다. 성호 이익도 이렇게 말했다. “남은 잃는데 나만 얻으면 성내는 자가 있고 남들이 우러러보는데 내가 인색하면 서운해하는 자가 있다. 혼자서만 부를 누리면 원망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내 배 부르니 종의 허기를 살피지 않는다’는 속담의 참뜻을 되새겨야 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