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역시 고향… 해운대 덕에 밥 묵네요”

  • 입력 2009년 10월 1일 02시 48분


영화 ‘해운대’서 1000만 관객 웃기고 울린 김인권 씨

《‘뭘 해서 먹고사나. 탁구장을 차려볼까.’ 영화 ‘해운대’ 개봉 전. 배우 김인권(31)은 심각하게 생계를 고민했다. 술잔 놓고 마주 앉은 윤제균 감독에게 “당구장이 나을까요, 탁구장이 나을까요” 하고 한숨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1000만 관객 돌파. 상상도 못했다. 트레일러가 운석처럼 쏟아지는 광안대교 신에서 ‘감초’ 김인권은 관객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지난해 영화 ‘숙명’의 흥행 실패 이후 똑 끊겼던 일감이 솔솔 들어온다. 하지만 김인권은 여전히 고민한다.

“데뷔한 지 10년 되니까 한 치 앞 모른다는 걸 조금 알 것 같아요. 부지런히 수주하지 않으면 밥줄 끊기더라고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인권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옷차림에서 보여줬다. 전날 밤 “추석특집 인터뷰 맞느냐”고 전화로 거듭 묻던 그는 화사한 분홍색 한복 차림이었다. 땟물 전 티셔츠로 해운대를 누비던 ‘동춘이’는 간 곳 없었다.

“고향(부산)이오? 아유, 못 내려가죠. SBS 새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촬영 때문에 정신 없어요. ‘해운대’ 찍는 동안 그래도 아버지 곁에 제법 오래 있었으니까요 뭐….”

김인권은 ‘무뚝뚝한 부산 남자’다. 아버지랑 전화하면 “밥 묵었나?” “묵었다” 한마디씩 툭 던지고 그냥 끊는단다. 딴청 하는 눈빛에 애써 감춘 속마음이 살짝 묻어났다.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철들 때쯤 “내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저 “공부도, 싸움도 애매한 처지에 부모 핑계로 엇나가 보자”고 작정했다. 싸움 잘 하는 친구들과 노래방 가서 담배 피우는 게 일상이 됐다.

본드 흡입 직전까지 갔을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 마치자마자 교실 맨 뒷자리에서 맨 앞자리로 옮겼어요. ‘공부 잘해라’는 게 엄마 소원이었으니까. 어머니 영혼이… 도와주는 게 가끔 느껴져요.”

아버지와의 대화가 많을 리 없다. 부자가 나란히 앉아서 첫째 딸 자영이 재롱을 보다가 괜히 둘 다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 두 부산 남자. 한 시간 넘게 서로 외면하고 아기만 바라봤다.

2003년 결혼한 아내에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느지막이 군대 간 남편 없이 혼자서 첫째 딸을 키워줬다. 이제는 또 갓 낳은 둘째 민경이 보느라 정신이 없다. “밖에서는 여기저기 좋은 얘기 듣고 다니지만 집에 들어가면 딴 세상이에요. 애기 엄마가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데, 대화에 영화 얘기는 거의 없어요.(웃음) ‘자영이 발레복 살 수 있어…?’ ‘민경이가 자영이 얼굴 긁어서 상처 났어…’ 매일 밤 그러다 지쳐서 잠들죠.”

아내는 해운대 열기가 한참 달아오르고 나서야 남편 영화를 봤다. 어느 날 밤 둘째를 재워 놓고 “깨서 울면 바로 전화하라”더니 집 앞 영화관에 혼자 쪼르르 뛰어 다녀왔다. 여느 때처럼, 칭찬은 없었다. “쓰나미가 왜 그렇게 천천히 와?” 꿈결에 그 한마디만 어렴풋이 들렸다.

김인권의 얼굴은 해운대 포스터에 없다. 2007년 윤제균 감독이 ‘색즉시공2’ 주연으로 낙점했지만 “투자사가 극구 반대한” 비호감 얼굴 탓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광안대교 트레일러 신의 ‘스케일’보다 김인권의 감칠맛 나는 ‘슬랩스틱’을 기억한다. 윤 감독의 비현실적 상상은 배우 김인권에 의해 얼큰한 국밥 같은 현실의 온기를 얻었다.

“짐 캐리와 주성치를 좋아해요. 판타지에 가까운 비현실적 코미디를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이죠. 저는 윤 감독님이 호되게 비판 받았던 ‘낭만자객’을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김인권이 출연하지 않은 거였어요.”(웃음)

김인권에게 영화 일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만들었던 교회 연극의 연장이다. 당시 함께 무대에 섰던 친구가 지금의 매니저. “영화가 보고 싶어도 극장 갈 형편은 못 됐어요. 거의 달마다 개봉관에 가던 다른 친구에게 부탁해서 영화 팸플릿을 받아 스크랩북에 붙여 모았습니다.”

인색할 인(吝)에 권할 권(勸). “인색하게 사느냐”는 질문에 “소박하게 산다”고 답한 그는 기자의 팔을 슬쩍 잡으며 ‘돈 많이 벌라고 그렇게 이름 지어준’ 아버지를 염려했다. “이번 추석에는 가까운 처가에만 얼굴을 비칠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는 추석 다음 주에 열리는 (부산)영화제 때 뵈어야죠. 걱정 안 하시게, 밝은 얘기만 써 주세요.”

눈은 또 딴청이다. 속 무른 이 부산 남자. 마음은 벌써 해운대 아버지 곁으로 보낸 듯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동아일보 손택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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