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때린 주먹이 쓰라린건 폭력의 양날에 베인것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검은 빛/미우라 시온 지음·이영미 옮김/363쪽·1만2000원·은행나무

짙푸른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섬 곳곳에 피어있는 동백꽃, 풍어 깃발을 날리는 어선과 활기찬 항구의 사람들. 중학생이던 노부유키에게 미하마 섬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러나 균열은 있다. 노부유키를 따르는 열 살 난 다스쿠는 늘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다. 노부유키는 등대지기 노인에게서 콘돔을 사 동갑내기 미카와 관계를 맺는다. 섬사람들은 다스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묵인한다.

어느 날,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이 섬을 삼킨다. 압도적인 자연의 폭력 이후 섬에 남은 것은 진흙에 뒤덮인 시체의 물결과 몇 명의 생존자뿐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무(無)의 세계. 복구 작업을 기다리며 섬에 남아있던 노부유키는 외지인 야마나카가 미카를 겁탈하려는 것을 발견한다. 격분한 노부유키는 야마나카를 목 졸라 죽인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식의 땅은 없다. 폭력에 상처 입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20여 년 뒤, 노부유키는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사랑하는 척 가정을 꾸린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폭력의 연쇄작용이 계속된다. 딸 쓰바키는 정체 모를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노부유키의 살인을 목격했던 다스쿠는 그의 곁을 맴돌며 그의 아내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다스쿠를 폭행하던 아버지는 홀연히 나타나 살인의 증거로 노부유키와 미카를 협박한다. 결국 노부유키는 폭력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실행한다.

만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주로 유쾌하고 발랄한 작품을 써왔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한다. 등장인물들은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치밀한 서술을 통해 인간의 이면에 대한 두려움과 연민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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