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배근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제법)는 17일 “한일병합 당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서양과 일본의 국제법 개설서들을 분석한 결과 당시 국제법은 한일병합이 조약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한국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 ‘시제법적 관점에서 본 조약 체결의 형식과 절차-한일병합 관련 조약 유무효론 평가를 위한 일고(一考)’를 22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여는 ‘일본의 한국병합 효력에 대한 국제법적 재조명’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 2010년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을 앞두고 그 교훈을 되새겨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이를 본격 재조명하는 첫 학술회의다.》
■ 내년 100주년… 동북아역사재단 22일 국제학술회의
한일강제합방의 불법성을 둘러싼 기존 논쟁이 한일 양국의 문제로 한정된 반면 박 교수는 ‘특정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난 당대 법의 효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시제(時際)법을 기초로, 세계에 통용된 국제법의 관점에서 한일강제합방 관련 조약 문제를 접근했다.
박 교수는 9세기 말∼20세기 초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국제법 개설서의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조약 체결 대표가 직책상의 권한을 넘어서는 조약을 체결해서는 안 되고 △외무장관이나 외교사절이 아닌 사람에게는 전권위임장이 반드시 요구되며 △조약은 비준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견해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영국 법학자 오펜하임은 ‘국제법’(1905년)에서 “조약은 정당하게 권리를 부여받은 대표의 행위에 의해 상호 합의가 명백해지는 순간에 체결되지만…비준이 이뤄지지 않는 한 조약은 체결됐다고 하더라도 완전하지 않다”고 썼다. 일본 법학자의 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키야마 마사노스케의 ‘국제공법완(國際公法完)’(1893년)은 “(조약) 체결권이 없는 자가 주권자로부터 위임을 받아 상대방 국가의 정부와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그 정부에 제시하여야 할 신임장 외에 위임장을 휴대해야 한다…지금은 조약이 비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전권위임장이나 비준서도 없이 체결한 한일강제합방 관련 조약이 무효라는 주장은 당시 국제법에 비춰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박 교수는 “당시 유럽 중심, 제국주의적 성격의 국제법은 힘을 사용한 조약 체결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 ‘강압에 의한 한일강제합방 조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이태진 교수, 이 교수와 함께 한일강제합방이 무효라고 주장한 저서 ‘한일병합과 현대’를 펴낸 사사가와 노리가쓰 일본 메이지대 교수 등 한국 미국 일본 학자 9명이 발표한다. 지명관 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과 무사코지 긴히데 일본 오사카경법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이 기조연설에 나선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0년 8월 △한일강제합방의 불법성을 보여주는 국내외 실증자료 △국권침탈로 파생된 일제강점, 일본군 위안부, 문화재 약탈 등의 문제 △아시아 역사의 화해와 평화 구축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를 잇달아 열고 2011년 학술회의 결과를 출판할 계획이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 같은 3개년 계획을 추진할 준비위원단을 이태진 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에드워드 슐츠 미국 하와이대 태평양아시아연구학부장 등 한미일 학자 13명으로 발족했다”고 말했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도 2010년 8월 ‘국치 100년’ 공동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지금까지 10개 연구단체가 참여했다. 한국근현대사학회는 2010년 8월 ‘대한제국 국권상실 100주년 학술회의’를 연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