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학원다니면서 준비한다"

  • 입력 2009년 4월 28일 18시 31분


"남자들이 연애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정 조절의 실패에요. 처음부터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 상대방에 부담을 주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자, 화면 속의 남녀를 보고 특히 여자의 입 모양, 눈빛, 이런 보디랭귀지를 잘 살펴보세요."

21일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K 연애학원. 지난 20여 일 동안 화술, 스킬, 데이트 스타일을 강의한데 이어 '여성의 심리'에 대한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수강생들의 눈빛은 진지하기만 했다. 선생님인 연애 컨설턴트 김병철 씨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부분에선 다들 하나라도 놓칠세라 메모하기에 바빴다.

●연애학원은 성업 중

다들 불황이라지만 '결혼 시장'만은 미혼남녀의 뜨거운 관심 속에 봄바람을 타고 있다. 연애 컨설턴트를 만나 성공적인 데이트 비법을 배운다거나,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등 수동적으로 결혼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결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k 연애학원은 1일 속성반인 소개팅 전문 특별반, 2개월 과정의 정규반, 약점 공략 특별 코스 등 10여 개의 코스를 운영하며 성업 중이다. 1일 과정에 5만 원, 10회 특강에 200만 원으로 수강료가 적지 않지만 결혼 적령기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수강생들은 이쯤이야 아깝지 않다는 표정이다.

수강생 최모 씨(36)는 "결혼을 위해서는 뭔가 준비를 하고 능력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을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 정모 씨(26)도 "순애보적인 사랑이 아니라 '느낌' '코드'를 중시하는 요즘 세상에는 특히나 이런 연구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굳이 숨기지 않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추천하는데 다들 한번쯤 다녀보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고 전했다.

●"결혼은 만들어가는 것"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애컨설턴트들은 20명 안팎. 개인차가 있지만 유명 컨설턴트들은 한 달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소개팅 파티에 대한 미혼 남녀의 관심도 높다. 싱글들의 파티를 위한 전문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으며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도 미혼남녀들의 자연스런 만남을 주선하는 파티 클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원생인 이윤아 씨(25)는 "괜찮은 전문직 남녀만 모이는 파티가 있다는 파티플래너의 초대메일을 받아 우연히 한번 '소개팅 파티'에 참여했는데 상상 이상이었다"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이런 곳도 꾸준히 다니며 좀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같은 결혼준비 활동이 일반화되어 '혼활'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2008년에 출간된 일본의 가족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와 저출산문제 연구가인 시라카와 도코(白河桃子)가 함께 쓴 '혼활시대(婚活時代)'라는 책은 일본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들은 책에서 "과거처럼 때가 되면 결혼을 쉽게 하는 시대는 갔으니 이제 취직 준비하듯이 보다 좋은 결혼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한국에도 4월 1일 '결혼심리백서'라는 이름으로 출간돼 도서판매 웹사이트의 자기관리분야 베스트셀러 순위권에도 진입하는 등 서서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결혼 준비 바람에 대한 반응은 "현실적으로 이해가 간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로 엇갈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싱글에게 '불황'이 오히려 상대방을 찾아 나서게 하는 심리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자신이 내리는 결정을 불안해하며 결과에 책임지기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게 불황을 만나 더 강해졌을 것"이라며 "그 때문에 결혼이라는 만남의 문제에 대해서조차 전문가의 의견이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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