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떠나자]<3>청평 ‘쁘띠 프랑스’

  • 입력 2009년 3월 5일 16시 06분


"이번 주말에 우리 프랑스 갔다 올까?"

웬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대사냐 하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프랑스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것도 왕복 교통비 1인당 5900원에.

지난해 7월 경기 가평군 청평면에 문을 연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작은 프랑스)는 은퇴한 한 기업가가 개인적으로 조성한 프랑스 문화체험단지. 프랑스에서 해체해 들여와 다시 지어놓은 150년 된 고택과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개장 하자마자 이곳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촬영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어린왕자'보다 '베토벤 바이러스'로 유명하다.

기차표 한 장 들고 작은 프랑스를 거쳐 아침고요 수목원을 들려서 오는 코스로 여행을 떠나보자.


▲동아닷컴 서중석 기자

쁘띠 프랑스가 '프랑스적'이라면 아침고요 수목원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이름을 정했듯, 수목원 내 모든 건물을 한옥으로 짓는 등 분위기가 매우 '한국적'인 곳이다.

●어린왕자와 작은 프랑스, 그리고 베토벤

쁘띠 프랑스에 가려면 경춘선 기차를 타야 한다. 청량리 역에서 매 시간마다 한대씩 무궁화호가 출발한다.

기차에 오른 것은 3일 오전 7시 50분. 오랜만에 마른땅을 적셔주는 단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청량리 역에는 현재 민자 역사를 건설 중이다. 현재 사용 중인 건물이 얼핏 보면 가건물처럼 생겼고 공사 때문에 주변이 어수선하다.

하지만 건물 내부는 쾌적하다. 넓지는 않지만 매표소 옆에 어린이 놀이방 까지 마련돼 있다.

퇴계원 금곡 마석 대성리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리며 청평역에 도착한 것은 9시. 1시간 10분가량 소요됐지만 의자를 젖혀 놓고 깊게 잠이 드는 바람에 눈 뜨고 보니 어느새 청평이었다.

청량리-청평 철도의 길이는 30.9㎞. 고속도로라면 15분정도 거리지만 경춘선은 하나의 철로로 열차들이 왕복운행 하기 때문에 수시로 마주 오는 열차를 위해 선로를 내줘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년 개통 예정으로 현재 복선 전철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경춘선의 대부분 역이 그렇듯, 청평역 역시 오래된 1층짜리 건물이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데다 합성수지로 만든 지붕이 기와지붕 모양을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이뤄지는, 출발하는 기차에 타지도 못할 거면서 여자 주인공이 남친 앉은 칸을 향해 열심히 뛰는, 그런 시골 기차역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기차에서 내려 역사(驛舍)를 보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탈출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청량리에서 청평까지 운임은 편도 2900원. 쁘띠 프랑스로 가는 길에 드는 교통비는 여기까지다. 청평역에서 쁘띠 프랑스까지는 쁘띠 프랑스가 운행하는 전용 셔틀 버스를 타면 된다. 무료.

셔틀 버스 앞 유리창에서 '쁘띠 프랑스-대성리역' 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동안 셔틀버스는 대성리역을 오갔다. 거리상으로는 청평역이 더 가까우나 역 앞에서 버스를 돌릴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성리로 다녔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청평역장이 일반 차량 통행이 허용되지 않는 역 안 쪽 공터에 버스 진입을 허용해 회차하도록 했다. 9일부터는 가까운 청평으로 운행하기로 노선이 바뀐 것이다.

★TIP=9일부터 쁘띠 프랑스 셔틀버스는 대성리역이 아닌 청평역에 선다.

청평역에서 쁘띠 프랑스 까지 거리는 약 14㎞다. 굽은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해 소요 시간은 약 30분 정도.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30분이다.

14㎞중 약 9㎞가량이 북한강변 도로를 달린다. 도로의 높이가 강의 수면과 비슷해 높은 곳에서만 강을 내려다보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난 도로는 운전자들 사이에서 '환상의 드라이빙 코스'로 꼽힐 정도. 앞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셔틀버스 운전기사는 "가급적 맨 앞자리에 앉는 게 좋다"고 권한다.

쁘띠 프랑스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크고 작은 건물 10여개가 언덕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조깅하듯 한 10분 뛰면 더 이상 밟아볼 길이 없을 정도.

이 곳은 산책하긴 위한 장소는 아니다. 잠시 도시를, 아니 한국을 떠나 유럽에 온 기분으로 머리를 식히는 곳이 맞다.

쁘띠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가 봐야 할 곳은 '주택 전시관.' 건물 안에 여러 주택 모형이 있는 곳이 아니라, 이 건물 자체가 전시물이다. 150년 된 프랑스 고택(古宅)을 해체해 들여와 쁘띠 프랑스에 새로 지었다.

건축 양식이 한옥과 비슷하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지붕을 떠받드는 서까래의 모습만 보면 한옥과 헷갈릴 정도.

이 밖에 침대, 소파, 의자, 화장실 세면대, 재봉틀 등도 150년 전 것을 그대로 들여와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 둘러볼 곳은 주택전시관과 맞닿아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 지휘자실 촬영장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 강마에의 작업실로 쓰인 곳이다. 쁘띠 프랑스에서 이름 붙인 'B동' 보다 '강마에 작업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개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장소만 빌리고 소품은 준비해 온 것으로 쓰거나, 현장에 세트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팀은 별도의 준비 없이 드라마를 찍었다. 지금도 강마에 작업실에는 드라마에서 연기자들이 만지고 앉았던 가구와 소품들이 고스란히 있다.

강마에가 봤던 악보도 그대로 펼쳐져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한 무리의 남성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OO 은행 CF 제작팀인데 촬영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역시나, 광고인답게 대답하다.

"멋있게 찍어주세요."

그리고는 왜 모자는 눌러쓰는지….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CF, 드라마 촬영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게 쁘띠 프랑스 측 설명이다.

프랑스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다. 쁘띠 프랑스에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생텍쥐페리 재단과 공식 계약을 맺고 생텍쥐페리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생텍쥐페리의 일대기와 함께 그가 생전에 직접 그린 스케치와 그림, 메모 등의 실물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 각종 오르골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르골하우스', 프랑스의 국조(國鳥)인 수탉을 테마로 한 작품이 전시돼 있는 '갤러리', 직접 장난감을 만들 수 있는 '어린왕자 기념품 매장' 등을 둘러 보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다.

식사 장소는 '비스트로'. 점심메뉴는 간이 한식 뷔페로 마련됐다. 값은 어른 9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

쁘띠 프랑스가 '한국 속의 작은 프랑스'이면서도 아직은 곳곳에 '프랑스답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건물이나 시설 이름에 '주택관', '소극장', '갤러리' 등 이국적이지 않은 표현이 많다.

'메종'(집), '떼아뜨르'(극장), '뮈제'(박물관) 등 친근한 프랑스어가 아쉬운 부분.

에어컨이 삼성전자 제품인 것은 프랑스 사람들도 삼성전자 제품을 쓸 것이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대목.

프랑스 여행 중 애써 한국식당을 찾아온 듯한, 이국적 이름의 식당 '비스트로'에서의 한식 뷔페는 아쉽다.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시골 할머니의 맛 그대로 밥과 김치, 생선튀김, 나물 등이 진국인 된장찌개와 잘 어울린다.

쁘띠 프랑스에 어울리는 음식이 나오는 것은 10일부터. 이 때부터는 프랑스 급식업체가 만들어 내놓는 정통 프랑스 요리를 8000~9000원선에 즐길 수 있다.

장년층 방문객을 위해 한식 메뉴도 마련할 계획이다.

'프랑스에서의 하룻밤'을 원한다면 숙박동을 이용하면 된다.

숙박동에는 똑 같은 방이 하나도 없는 객실 34개가 있다. 특히 2층의 객실을 선택하면 지붕으로 난 창을 통해 밤에 별을 보며 잠을 청할 수 있다. 쁘띠 프랑스 주위에는 큰 건물이나 시설이 없어 밤에 별을 많이 볼 수 있는 게 특징.

객실 요금은 22만 원선. 일반 펜션보다는 비싼 편이다.

●때로는 올려다보고, 때로는 내려다보는 정원

프랑스를 떠나 이제는 한국으로.

쁘띠프랑스를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청평역으로 되돌아온 뒤, 이곳에서 아침고요 수목원행 시내버스를 탄다.

평균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버스가 출발한다. 아래 사진은 수목원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운행 시간표. 운임은 편도 1000원이며 교통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청평역에서 아침고요 수목원까지 거리는 약 13㎞다. 계곡을 따라 현리 방향으로 꼬불꼬불 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외진 곳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어느새 넓은 주차장을 앞에 둔, 잘 가꿔진 수목원 정문이 나온다.

아침고요 수목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수목원과 분위기가 다르다.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에 치열하게 정원을 가꾸고 또 가꾼다. 그래서 아침고요 수목원 사람들은 "우리는 농사를 짓는다"고 말한다.


▲동아닷컴 서중석 기자

1년 내내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정원을 고쳐 나간다. 참고로, 아침고요 수목원 내 꽃과 나무들 중에는 자생적으로 이곳에서 자란 놈은 하나도 없다. 모두 밖에서 들여와 이곳에 심어 키웠다.

"단골손님들에게 매번 같은 정원을 보여 줄 수 없다"는 것, 지금도 수목원 계곡 옆에는 인공 연못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민영화가 이래서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관람객이 있을 법 하다.

표를 끊고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 기념품 매장이다. 매장 문에는 '허브 차 무료'라는 안내문이 써 있다.

물론 일단 손님을 가게로 들어오게 해 구매를 유도하려는 의도지만 공짜 차의 유혹에 넘어가 가게로 발길을 들여도 후회스럽지 않다.

각종 천연 아로마 제품들에서 풍기는 향기롭다. 대형 마트의 방향제 코너에서 맡는, 화학적으로 제조된 머리 지끈거리는 냄새와는 질이 다르다.

공짜로 제공하는 차는 스위스산 도마코 허브 혼합차. 페퍼민트, 유칼립투스, 케모마일 등을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차를 한 모금 입에 넣자 금방 목과 코가 기분 좋게 뻥 뚫린다. 진한 박하향인가 했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내쉬는 숨에 향기로운 꽃향기가 묻어 나온다.

기관지, 피로회복 등에 좋고 식사 후 마시면 소화도 잘 된다는 게 매장 측 설명.

인심 좋고 넉넉해 보이는 여직원들이 손님들을 편하게 대해줘 맛만 보고 사지 않아도 미안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사실 매장 직원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바로 아침고요 수목원의 컨셉트다.

'정원을 거닐며 편히 쉬다 가시라'는 것이다. 다른 수목원과 달리 아침고요 수목원에는 정원에 심어진 식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저 덩그러니 이름만 쓰여 있을 뿐.

"복잡한 설명이 있으면 왠지 저걸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고,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질지도 몰라 그렇게 했다"는 게 수목원 측 설명이다.

아침고요 수목원의 특징은 수목원 내에 곧게 뻗은 길이 없다는 것.

좌우로 굽어있거나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어서 때로는 정원이 내려다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올려다 보이기도 한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수목원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야생화 전시실에서는 5월 17일까지 예정으로 '한반도 야생화전'이 열리고 있다. 겨울 끝자락이라 아직 야외 정원은 초록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전시실 내부는 봄의 절정.

이 곳 역시 그저 편히 쉬라 가라는 장소다. 전시실 내부의 꽃들은 이름표만 달고 있을 뿐, 학명이나 설명은 없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향기와 온갖 꽃의 향기와 색상 속에서 즐기라는 뜻이다.

공기 좋은 정원을 거닐며 편안하게 쉬는 장소. 튀는 볼거리는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수목원 가운데 계속에 관람객들이 하나 둘 쌓아 놓은 돌탑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군락이 이룬 곳이 있다.

단순히 돌을 쌓고 싶어서라고 보기엔 그 규모가 너무 엄청나다.

"쌓인 돌 만큼 사람들의 소망도 많은 게 아니겠느냐"는 게 수목원 관계자의 설명.

돌 쌓기가 미신이라 싫다면, 하느님을 찾아 정식으로 기도하고 싶다면 수목원 안쪽의 '미니 교회'로 가면된다.

4, 5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교회에는 작지만 설교를 위한 연단과 뒤쪽에 십자가도 제대로 마련돼 있다. 물론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는다.

주로 이 교회를 찾는 사람은 십자가 앞에서 미래를 약속하는 연인이 많다고 한다.

느릿느릿. 맑은 공기를 즐기며 걷다 보면 2, 3시간 정도면 아침고요 수목원을 다 볼 수 있다. '들꽃향기' 식당에서 비교적 '착한' 가격에 파는 '돌향기 비빔밥'(6000원), 토마토 스파게티(8000원) 등으로 요기를 해도 이 시간이면 충분하다.

전통찻집 '도원'에서 판매하는 석류, 산수유, 산머루 차(6000원)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산책에 나서는 것도 운치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벤치 등에 누워 아예 잠을 자며 6, 7시간 정도 수목원에 머물다 가는 관람객들도 있다는 게 수목원 측 설명이다.

아침고요 수목원을 나와 다시 청평역으로. 1시간에 한 대 꼴로 오는 버스 기다리기가 지루하면 택시를 불러도 좋다. 버스 정류장에는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전화번호도 안내돼 있다. '청평택시' 전화번호는 031-584-1183.

택시 요금은 미터기대로 내기만 하면 된다. 간혹 시골이라는 생각에 미터기가 아닌 별도 정해진 요금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승객이 있으나, "도시처럼 그냥 미터기 요금만 내면 된다"는 게 운전기사의 설명.

이날 청평역까지 요금은 1만4600원이 나왔다.

생각보다 비싼 편. 급한 일이 아니라면 수목원 맑은 공기 속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타는 것을 추천한다.

발이 빠르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아침 일찍 쁘띠 프랑스, 낮에 수목원, 오후에는 남이섬도 욕심내볼만 하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행군. 휴식이 목적이라면 이쯤에서 청평역으로 발길을 돌려 기차에 오르는 게 현명해 보인다.

하루 만에 즐기는 프랑스여행, 그리고 큰 정원에서의 휴식 겸 산책. 뉴칼레도니아의 '구준표' 부럽지 않은 하루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었다.

글·사진=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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