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을 걱정하는 편지와 함께 긴급구호자금을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8일 윤공희 대주교(86·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에 따르면 김 추기경은 계엄군이 시민군에 밀려 광주 도심 외곽으로 후퇴하고 봉쇄작전을 펼치던 1980년 5월 23일 윤 대주교에게 서신을 보냈다.
교통수단이 끊긴 데다 서슬 퍼런 계엄령하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김 추기경의 편지는 군종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광주까지 전달됐다.
김 추기경은 한 쪽짜리 편지를 통해 “광주에서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크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평화적으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 대주교는 “다급하게 쓴 듯한 짧은 편지 속에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액수인 100만 원권 수표가 함께 들어 있었다”며 “노심초사 광주 시민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추기경님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동봉된 100만 원은 곧바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맡겨져 부상자 치료와 구속자 영치금 등 일종의 긴급구호자금으로 쓰였다.
김 추기경은 후일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광주의 5월”이라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윤 대주교는 “추기경께서는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당시 교황청대사를 통해 주한 미국대사 등을 만나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