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상 깨알글씨 빼곡…소년병 일기 58년만에 세상 밖으로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1951년 10월 29일 안개 많음

북한군은 밤만 되면 기차로 고향 쌀을 실어 날랐다. 죽도록 농사를 지어놨는데 한 톨도 안 남기고 훔쳐가니 기가 찼다.

밤 12시쯤 몰래 철로에 들어가 TNT 폭탄을 설치했다. 열차는 평소보다 20분 빠른 1시 40분쯤 들어왔다. ‘두둥’ 소리 와 함께 기차가 두 동강이 나며 쌀이 파도처럼 피어올랐다. 다음 날 아침 땅 굴에서 잠을 자는데 노인들이 찾아와 소 년신문을 보여 줬다. 1면에 “학도 빨치가 인민군 기차를 폭발시켰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1952년 2월 7일 맑음

소년병에 온 지 1년 만에 본 형님의 얼굴은 비쩍 말라 있었다. 형님은 울면서 ‘다 죽었다’, ‘다 죽었다’고 했다. 동

네에 열병이 돌아 부모님과 누님, 조카가 다 죽었다. 그날 밤 난 보트를 타고 옹진 집으로 향했다. 숙부는 나를 마당 뒤뜰로 안내했다. 네 개의 작은 봉우리가 솟아 있었다. 북한군이 무서워 장례를 산에서 치르지도 못하고 밭에다 (시신을) 모셔 놓았다. 숙부는 “이거는 아버지고, 저거는 어머니다”라고 말했다. 돌아오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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