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춘기 여고시절 그때 왜 그런일이…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란제리 소녀시대/김용희 지음/320쪽·1만1000원·생각의 나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지 17년 된 저자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1970년대 말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을 모티브로 삼았다. 사춘기 소녀들의 우정과 좌충우돌 일탈에 시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치를 더했다.

소설은 폐경기를 맞은 중년의 주인공 이정희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머릿속 자신의 얼굴에 ‘근조’란 검은 테이프를 양옆으로 붙이는 상상을 할 만큼 나이 듦에 상심하지만, 그에게도 고등학생 딸애처럼 이제 막 몸속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가 있었다. 이야기는 이제 열여덟 당시로 되돌아간다.

대구 정화여고 2학년인 이정희는 완구공장을 하는 집안의 둘째 딸로 쾌활한 성격의 여학생이다. 수업 시간 몽상에 잠기는 것을 즐기고 친구들과 몰려나갈 계성고 남학생들과의 미팅을 손꼽아 기다리며 미장원에서 ‘선데이 서울’을 훔쳐보는 것으로 성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곤 한다. 그러던 중 예쁘고 단정한 문학소녀 혜주가 전학을 온다. 전학 오자마자 혜주는 문예 서클인 ‘알암’에 가입하고 시화전을 연다. 정희는 ‘왜 알암 애들이 관념적이고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시를 쓰고 또 시화전에 출품하는지’ 곧 알게 된다. 다른 학교 문예반 남학생들과 자연스러운 교류를 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혜주와 금방 친해진 정희는 계성고에서 주최한 문학의 밤 행사에 함께 참석했다가 비틀스의 ‘헤이 주드’를 부른 진이 오빠에게 반한다. 하지만 그는 혜주와 각별한 사이가 되고 정희는 좌절한다. ‘그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고3이 된 정희는 무사히 입학고사를 치른다. 그런데 여고생들의 순수한 추억으로 마무리돼야 했을 그 시절 혜주가 동네 총각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정희는 이 사건과 관련된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그 시절을 넘긴다.

소설 말미 뜻밖의 사고가 벌어지지만 저마다의 성장통을 겪는 30년 전 사춘기 소녀들의 일상이 정감 있고 경쾌하게 그려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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