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Black&White]반상의 반란 ‘영남은 찬란’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8시 11분


영남일보 꼴찌서 챔피언까지… 프로바둑리그 사상 첫 2연패

대회규모 35억원.

단일 기전으로는 세계 최대의 몸집을 지닌 한국바둑리그가 대구 영남일보를 챔피언팀으로 등극시키며 2008 시즌에 마침표를 ‘쾅’ 찍었다. 영남일보는 지난해에도 우승을 했으니 올해 2연패다. 한국바둑리그사상(그래봐야 6년이지만) 한 팀이 2년 연속 우승을 한 것은 영남일보가 처음이다. 연속은 커녕 띄엄띄엄 2번 우승을 한 팀도 없었다.

꼭 우승을 해서가 아니라 영남일보팀은 은근히 매력이 있는 팀이다. 2005년에 창단한 영남일보팀의 이후 행보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반상의 ‘우생순’을 꼽자면 단연 영남일보팀이다.

2005년 신생팀으로 첫 출전한 영남일보는 그 해 8개 팀 중 꼴찌를 했다. 세계 유일의 정치학 박사 겸 프로기사인 문용직 5단이 감독을 맡았는데, 평소에도 기인에 가까웠던 문 감독의 ‘자율’을 넘어선 ‘방임’ 수준의 지도 스타일이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해체설까지 나돌았던 영남일보는 ‘1년만 더 해보자’는 심경으로 이듬해 재출전했다.

사퇴한 문 감독을 대신해 후배 최규병 9단이 꼴찌호의 선장을 맡았다. 최 감독은 ‘자율’과는 본시 거리가 먼 인물. 취임일성부터가 “혹독하고 무지막지한 훈련을 각오하라”였다. 선수들도 젊은 기사들로 채워 팀컬러를 싹 바꿨다. 그 결과 영남일보는 1위팀이 됐다. 언론과 팬들은 꼴찌에서 챔피언으로 거듭난 영남일보에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인간승리의 드라마는 어디서나 각광을 받는 법. 사실 올해 영남일보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창호·조훈현 사제에다 박정상을 더한 GS칼텍스의 킥스, 박영훈이 이끄는 신성건설, 이세돌과 최철한이라는 무적의 투톱을 보유한 제일화재 등이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아니나 다를까 영남일보는 리그 초반부터 연패의 수렁 속을 허우적대며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리그 중반에 접어들면서 슬슬 연승 시동을 걸기 시작하더니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리그 1위팀 신성건설을 꺾고 최후의 승자가 됐다.

반면 신성건설은 지난해에 이어 영남일보에 연달아 ‘물’을 먹으며 2년 연속 준우승이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우승후보였던 킥스는 전문가들을 무색하게 만들며 지난해 7위에 이어 올해는 최하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호랑이’ 최감독은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올해 멤버들이라면 내년에도 또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지간히 말을 아끼고 사는 최 감독이 호언을 했다. 영남일보가 우승한 13일. 샴페인이 땅을 적시고 생크림 케이크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이것으로 9개월 간의 KB국민은행 2008 한국바둑리그도 종국. 23일에는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시상식을 갖고 진짜 마침표를 찍는다.

아참, 영남일보팀 선수들이 상금에서 갹출해 기자들에게 점심을 한 턱 쏘기로 했다. 은근히 기다려진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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