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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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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 연재물 펴내 선풍적 인기
‘새로운 읽을거리’ 가능성 제시해
“순수문학서도 판타지 요소 활용”
《한국 판타지문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이영도(사진) 씨의 ‘드래곤 라자’가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았다.
1997년 PC통신 하이텔 연재소설로 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문학·출판계는 물론이고 문화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1998년 황금가지에서 책으로 출간된 드래곤 라자는 지금까지 1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2004년 장르문학으로는 유일하게 고등학생 문학 교과서(태성출판사)에 수록됐다.》
최근 출간된 11만 원 상당의 ‘10주년 기념 양장 한정판’ 2000세트는 인터넷 서점 예약 판매 3분 만에 매진돼 여전한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드래곤 라자는 무엇보다 판타지문학 시장을 획기적으로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황금가지 김준혁 편집장은 “당시만 해도 PC통신에 연재된 판타지문학을 출간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며 “드래곤 라자의 성공으로 출판사와 작가들이 새로운 금광인 판타지문학에 주목했고 이우혁 전민희 홍정훈 작가 등과 함께 2000년대 초반까지 판타지문학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눈물을 마시는 새’를 비롯한 이영도 씨의 후속 작품도 역시 판타지문학의 성장에 힘입어 10만∼20만 부의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이런 성공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드래곤 라자는 해외에도 판권이 수출돼 일본에서 40만 부, 대만에서 30만 부 판매를 기록했다. ‘퓨처 워커’ ‘눈물을 마시는 새’ 등 이 씨의 다른 작품들도 대만에서 잇따라 출간될 예정이다. 소설가 송경아 씨는 “출판사는 물론이고 독자들에게도 판타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자리 잡지 못했던 국내에서 드래곤 라자의 등장은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읽을거리의 가능성을 제시해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드래곤 라자는 게임, 라디오 드라마, 만화 등으로 제작되며 ‘원소스 멀티유스’의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특히 1999년 온라인 역할수행게임(RPG)으로 개발된 드래곤 라자(바른손 인터랙티브)는 중국, 대만, 미국 등 10개국으로 수출되며 판타지 장르에 기초를 둔 온라인 게임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장르문학 전문 브랜드인 오멜라스의 박상준 대표는 “드래곤 라자 등을 기점으로 장르문학에서 콘텐츠 확보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10여 년 사이 문화 전반으로 확산됐다”며 “원소스 멀티유스의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드래곤 라자 출간을 기점으로 10년을 맞이한 한국 판타지문학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송 씨는 “이제까지 판타지문학이 장편에 치중돼 있었다면 지금은 단편집 출간 등 여러 실험이 이뤄지고 있으며 순수문학쪽에서도 장르적 경계가 흐려지며 판타지, SF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작가, 출판사들이 우후죽순 몰려들면서 장르의 위상 추락, 거품 붕괴로 인한 시장 위축, 작가들의 창작 역량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김 편집장은 “2000년대 이후 불어왔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 해외 판타지문학의 인기가 국내 장르문학 발전과 잘 연동되지 않았다”며 “해외 작품 소개도 중요하지만 수준 높은 국내 작가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나도록 뭐가 발전했나 돌이켜보면 무서운 것들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이 씨는 “결국은 좋은 글이 많이 나오는 것 외엔 답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드래곤 라자 출간 10주년에 맞춰 3년 만에 기념신작 ‘그림자 자국’(황금가지)을 28일 출간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드래곤 라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대표적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보듯, 판타지문학은 대체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영도 씨도 인간과 드래곤(용), 엘프, 오크 등 다양한 종족이 대립과 공존을 이루며 살아가는 세계를 구축했다. 드래곤 라자는 드래곤과 영혼으로 교감해 드래곤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신비한 존재. 소설은 이 존재를 찾아 모험을 떠난 소년 후치 네드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후치와 그의 동료들이 드래곤 라자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 기본 골격이지만, 1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 만큼 에피소드와 반전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존재 지우는 무기’ 둘러싼 거대한 전투
28일 출간되는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의 그 다음 이야기다.
국내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팔린 드래곤 라자는 1998년 출간 당시부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컸던 작품. 1999년 외전 격에 해당하는 ‘퓨처 워커’가 나오긴 했지만, 그 다음 이야기를 바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그치지 않았다.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 시대로부터 10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가 배경이다. 여성 엘프 ‘이루릴’을 중심으로 전작에 나왔던 드래곤들의 후손 이야기를 다룬다. 이와 함께 드래곤 라자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신작에서 묘사될 것으로 알려져 더욱 기대를 모은다.
그림자 자국이란 제목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법 무기인 ‘그림자 지우개’와 연관 있다. 그림자 지우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드는 기상천외한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이 무기를 둘러싸고 벌이는 인간과 드래곤의 거대한 전투가 소설 속에 펼쳐진다.
그림자 자국은 소설가 이영도 씨가 2005년 ‘피를 마시는 새’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이 씨는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드래곤 라자를 만나고 싶다는 주위의 요청이 컸다”면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랑해준 팬들에게 좋은 글을 보여드리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