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 연구]<5>한중일 색채문화 비교 이정식 교수

  • 입력 2008년 11월 3일 03시 01분


이정식 호남대 중국어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중국 경극의 색채화장에 대한 자료와 함께 색깔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정식 교수
이정식 호남대 중국어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중국 경극의 색채화장에 대한 자료와 함께 색깔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정식 교수
“탈놀음의 신할아비, 경극(京劇)에 등장하는 삼국지의 조조(曹操), 가부키(歌舞伎)의 주인공…. 셋은 흰색 가면이나 분장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격은 조금씩 다르죠. 신할아비와 가부키 주인공의 흰색이 대체로 선(善)을 상징한다면 조조의 흰색은 음험한 악(惡)입니다. 색을 연구하면 한 사회의 문화코드를 읽을 수 있지요.”

이정식(48) 호남대 중국어과 교수는 한중일 3국의 색채문화론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전통극인 탈놀음과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에 나타나는 색채를 중심으로 세 나라의 색채문화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의 경극에선 조조와 같은 악인을 흰색, 관우 같은 의인을 붉은색으로 묘사하죠. 솔직하고 서민적인 장비는 검은색입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에게 흰색은 간사함과 죽음, 상사(喪事)를, 붉은색은 축하와 경사, 충성을, 흑색은 솔직함과 인간미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대표적 예술이라는 서예도 종이는 흰색, 글씨는 검은색이지만 마지막 완성은 붉은색 낙관이지요. 반면 탈놀음에서는 대체로 흰색이 선, 검은색이 악을 상징하며 가부키에선 선한 인물이 흰색인데 종종 강력한 악인이 더 짙은 흰색으로 분장합니다.”

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색에 빠지게 된 것은 국립대만사범대 석사과정 유학시절인 1991년 7월경. 대만인 룸메이트의 소개로 처음 경극을 보면서 경극의 색채화장인 검보(검譜)에 매료됐다.

“화려한 복장과 강렬한 원색 화장을 한 연기자들이 무대로 쏟아져 나오는데 수천 마리 비단잉어가 무대 위를 헤엄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색의 마력을 연구해보자고 결심했죠.”

그는 색채화장을 중심으로 중국 희곡 인물들의 조형예술을 분석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경극과 가부키의 색채를 비교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1998년 3월 ‘검보색채문화론’으로 학위를 받았다.

‘한중 전통극의 백색문화 소고’, ‘한중일 전통연극에 사용되는 오색(五色)을 중심으로 한 색채문화연구’ 등 20여 편의 관련 논문을 낸 이 교수는 최근 색에 대한 관념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20세기 초만 해도 중국을 연구하는 서양 학자 중에는 ‘세상이 바뀌어도 흰색을 불길하게 여기는 중국에서 신부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지금 중국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며 “색에 대한 관념의 변화는 소비 유형을 비롯해 사회 변화를 읽는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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