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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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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미술가들 사이에서 작가 이불(44)과 정연두(39) 씨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국내에서 인정받고 국제적으로도 각광받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이기 때문. 두 사람은 자신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서사에 강한 작가다. 그런데 이 씨는 사회나 집단이 가진 유토피아에 대한 실패한 꿈을 거대 서사의 틀로 아우르는 데 비해, 정 씨는 개인의 소소한 꿈을 세밀하게 되짚는 작업에 주목한다.
이 씨가 11월 20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02-515-9496)에서, 정 씨는 11월 1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02-733-8449)에서 각기 개인전을 연다. 두 작가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바탕으로 미적 완결성과 메시지를 갖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5월 뉴욕의 레만모핀갤러리 개인전에 이은 이 씨의 개인전은 ‘나의 거대한 서사’라는 주제로 이상사회와 현실의 간극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녹여낸 작품을 선보인다. ‘천지’는 검은 잉크가 담긴 대형 욕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형상화한 설치작품. 아름다운 산수화처럼 보이는 자개 페인팅은 숭례문 화재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을 함축한 평면작업이다. 양면 거울을 이용해 공간의 무한한 환영을 만들어낸 ‘Infinity’ 시리즈는 이상사회를 향한 굽히지 않는 희망을, 천장에 매달린 조각은 고속도로를 큰 스케일로 응축한 작품이다.
정 씨는 한국인 비디오 아트 작가로는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다. 다양한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을 보여주는 사진을 찍어 온 그는 이번엔 관객이 직접 주인공이 되는 사진 자판기 형식의 설치작품 ‘타임캡슐’과 비디오 시리즈 ‘수공기억’을 내놓았다. 타임캡술에 2000원을 집어넣으면 낯선 풍경 속으로 들어간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게 된다. 2층에 전시된 ‘수공기억’은 6점의 비디오 시리즈로 화면마다 노인이 등장해 평생 가장 기억에 남은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 옆 화면에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연출된 무대세트를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실현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이상과 현실의 틈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짚어낸 두 작가의 개인전이 그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