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같은 협찬’ 편법 기승

  • 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9분


“‘생각대로T’와 ‘부채표 까스활명수’가 서비스나 상품 이름이 아니라 사업자명이라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8월 1∼7일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내보낸 협찬 고지 70건에 대해 사업자명 대신 상표명을 쓰는 규칙 위반 사례를 적발했지만 29건에 대해서만 ‘권고’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협찬자가 상표명을 사업자명으로 등록해 방송법 규정을 피해갔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업들이 TV 프로그램에 협찬할 때 상품명을 쓰지 못한다는 방송법상 규정을 피하려고 상품명을 사업자명으로 등록해 방송에 내보내는 편법이 행해지고 있다.

SBS는 8월 7일 ‘베이징 올림픽 축구 대한민국 대 카메룬’ 경기를 중계하며 ‘생각대로T’가 제작 협찬을 했다고 자막과 음성으로 알렸다. ‘생각대로T’는 SK텔레콤의 휴대전화 서비스 명칭이지만 SK텔레콤은 이를 사업자로 등록해 협찬자로 나가도록 한 것. 방송법 협찬 고지 규칙은 기업이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시상품 경품을 협찬했을 때 협찬주명과 시상품명을 밝히는 것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법 취지대로 한다면 이 프로그램의 협찬자는 SK텔레콤이어야 한다.

‘부채표 까스활명수’는 동화약품공업이 생산하는 소화제지만 사업자명으로 등록돼 8월 2일 MBC ‘찾아라 맛있는TV’에서 협찬자로 방영됐다. 태화라텍스도 8월 4, 5일 KBS1 ‘아침마당’ 등에 시상품을 협찬하면서 협찬자를 ‘태화고무장갑’으로 나가게 했다.

‘천재교육’은 8월 3일 KBS1 ‘퀴즈 대한민국’에 이공계육성장학금을 협찬해 참고서 명칭인 ‘천재교육 해법수학’이 방송되도록 했고 ‘두리화장품’은 8월 6일 SBS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백화점 상품권을 협찬해 자사 상품인 ‘댕기머리샴푸’가 방송되도록 했다.

이처럼 협찬자가 회사명이 아니라 상품명을 사업자로 등록해 방송되도록 하는 편법을 쓰는 것은 협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국세청에 하는 사업자등록은 절차가 간단하고 등록 상호의 길이나 내용에 제한이 없다. 특히 개인 명의의 사업자등록은 사무실의 임대차 계약서 정도만 구비하면 등록이 가능하다. 협찬주들은 협찬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에 ‘생각대로T’ 등의 명의로 된 사업자 등록증을 제출했다.

‘흙표 산소 흙침대’ ‘정직한 가격 부어치킨’ ‘어린이명품 홍삼 함소아홍키통키’ ‘매운맛 화미핫다시’ ‘공부의 완성 에듀플렉스’ ‘올스본을 만드는 쉔픽스’처럼 상품이나 기업명 앞에 수식어를 포함시켜 방송되도록 하는 사례도 많다.

이에 대해 한 방송사 PD는 “위법이 아니고 시청자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 이상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며 “협찬 행위가 협찬주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규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방송사업자는 협찬주 또는 관련 있는 제3자의 상품과 용역의 구매를 권유하는 표현을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며 “기업과 방송사의 이 같은 편법 운영은 협찬주 이름만을 노출하도록 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으로 방송사들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