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솟은 초승달，실크로드 부흥 상징”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세워질 주상복합시설 ‘캐스피언 플러스’는 카스피 해로 열린 관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호텔(오른쪽)과 5개 동의 주상복합건물 디자인에는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사진 제공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가 자하 하디드(영국)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마리오 보타(스위스) 장 누벨(프랑스) 렘 콜하스(네덜란드)의 삼성미술관 ‘리움’, 대니얼 리베스킨트(미국)의 ‘아이파크 타워’….

서울 여러 곳에 건립됐거나 계획 중인 대형 건축물 중에는 세계적인 외국 건축가의 작품이 많다.

한국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양상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서울시 신청사를 설계한 유걸 아이아크 대표는 “건축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명품을 소비하듯 무조건 유명한 외국 건축가를 찾는 건축주가 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해외로 돌리면 “한국 건축가가 명성은 떨어져도 실력에서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유 대표의 말이 틀리지 않다. 도시 개발에 한창인 중동과 동유럽, 러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한국 설계 회사들이 성가를 내고 있는 것.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아제르바이잔 ‘캐스피언 플러스’는 대표적인 사례다. 캐스피언 플러스는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카스피 해 연안에 건설되는 대형 주상복합시설. 2011년 공사가 완료되면 카스피 해로 통하는 바쿠의 출입구가 된다. 2만6972m² 넓이의 해변 터에 나란히 올라갈 다섯 개의 빌딩 외에 1만3288m² 넓이의 인공 섬을 만들어 7성급 ‘크레센트(Crescent·초승달) 호텔’을 세운다. 현재 매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34층 높이에 528개실을 갖게 될 크레센트 호텔은 이름 그대로 초승달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초승달은 국기 중앙에 그려진 아제르바이잔의 상징.

정영균(46) 희림 대표는 “서쪽으로 흑해, 동쪽으로 카스피 해와 맞닿은 아제르바이잔은 고대 실크로드의 요지였다”며 “바다와 육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국가 부흥의 이정표를 만들어 달라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요청을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호텔의 철골콘크리트 아치 구조는 바람이 거센 환경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데도 적합하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

해변의 ‘크레센트 플레이스’에는 37, 34층 높이의 오피스타워 2개 동과 28∼35층 높이의 아파트 3개 동이 들어선다.

가장 높은 유선형 ‘시티 타워’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처럼 바쿠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건물 디자인 역시 크레센트 호텔처럼 달의 이미지를 빌렸다. 유선형으로 솟은 건물의 꼭대기는 ‘바쿠의 하늘’을 상징하는 구(球)에 슬쩍 눌려 찌부러진 모양. 보는 방향에 따라 달처럼 모양이 바뀐다.

오피스타워와 아파트의 5개 건물 하부는 6층 높이의 대형 쇼핑몰 ‘포디엄(podium·기단)’으로 연결된다. 정 대표는 “이 쇼핑몰은 멀티플렉스 극장과 병원, 레스토랑 등 생활과 여흥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다섯 개의 건물과 초승달 호텔을 감싸는 구름 모양이 되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희림의 연간 설계부문 매출(1350억 원·2008년 예상)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4%(23억 원)에서 2008년 41%(550억 원)로 급증했다. 이 회사 최은석 기획본부장은 “2007년에는 예멘과 지부티에서 총 2100km² 규모의 ‘빛의 도시’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를 확보했다”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건축설계 디자인이 차지하는 몫은 갈수록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