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놓고 미친듯 돌아다닌 10년 그 방랑이 창작욕구 되살렸죠”

  • 입력 2008년 6월 13일 02시 58분


“제 소설은 정치 사회 문제에 천착하는 1980년대 주제 의식에 머물고 있었어요.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1999년)을 받자 더는 갈 곳이 없더군요. 쓸 것도 없고 쓸 수도 없는, 슬럼프의 시작이었죠.”

10년 방황을 마감하고 여행 산문집 ‘나는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시작)를 펴낸 소설가 박상우(50·사진) 씨를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간의 마음고생에 대해 먼저 입을 연 그는 “잊혀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연재했다가 관둔 작품, 미완성 원고를 개작해 발표하는 식으로 버텨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산문집 출간을 계기로 창작 활동을 본격 재개한다.

창작이 불가능했던 그 기간 그를 지탱한 것이 ‘여행’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울 때마다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훌쩍 떠났다. 강원도의 만항재(태백시) 청령포(영월군) 등 산문집에 등장하는 여행지들은 수없이 다닌 곳이어서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곳들이다. 오대산 월정사는 작가가 중학교 때부터 자주 찾았다.

“‘불현듯’, 그리고 ‘미친 듯이’ 떠났습니다. 카메라, 음악파일이 든 노트북컴퓨터, 스피커 세 가지만 챙겨서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나(그는 이를 ‘세속적 자아’라고 했다)를 훌훌 벗어던지며 여행한 지 10년이 되자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히 국내여행은 해외여행보다 공간과 나의 관계성을 발견하기 좋았습니다.”

문학과 ‘수평적 거리 감각’을 회복하고 ‘창작의 원천’을 되찾게 해 준 여행인 만큼 여행지에 얽힌 추억과 사연, 소회 등이 사색적인 문체로 그려졌다.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또다시 월정사 전나무 숲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는 곳, 내가 나를 만나는 곳, 내가 나를 되찾는 곳…내가 그리울 때마다 나는 그곳에 간다.’(‘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여행지 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글 읽는 맛깔을 살려준다. 모두 작가가 직접 찍고 보정작업을 마친 것이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그는 “눈으로 봤던 풍경을 사진으로 되살려내는 작업이 즐거워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며 “그간의 공백을 통해 의사에게 청진기가 있듯이 글은 내게 호미 한 자루 같은 도구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7월 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등 ‘마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인형의 마을’을 발표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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