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 입력 2008년 5월 3일 03시 00분


그는 김포공항에 도착해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을 되뇌었다.

19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제일 먼저 친구(親口) 의식을 거행했고 이어 방한사를 했다.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여러분의 벗으로, 평화의 사도로 여기에 왔습니다.”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한국인에겐 놀라움과 감동이었다. ‘논어’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구절까지 한국어로 인용하다니. 사람들 사이에선 “교황이 한국을 찾기 전 오랫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교황의 방한은 당시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희망이었다. 분단의 아픔, 민주화를 향한 진통으로 어수선했던 시절. 그 상황에서 교황이 한국을 찾았으니 교황에게 거는 기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으로는 처음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래서 평화의 메신저로 불렸다. 서울 도심에 150만 명의 인파가 모여 그를 환영한 것도, 교황의 방한 기념우표가 1시간 만에 동난 것도 바로 그런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교황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명의 가톨릭 신도가 모인 가운데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인의 시성식(諡聖式)을 가졌다. 그동안 교황청에서만 이뤄지던 시성식이 처음으로 교황청 밖에서 행해진 것이다. 분명 파격적인 시성식이었고 그 파격 속에서 한국 가톨릭 성인 103인이 탄생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관심은 각별했다. 그건 교황이 폴란드 출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치 침략으로 고통 받은 그의 조국 폴란드,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 교황은 분단의 나라 한국 땅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1989년 10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때 그는 남북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했다. 교황은 한반도의 평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북한도 방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05년 선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평화의 메시지는 이 땅에서 여전히 희망을 꿈꾸고 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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