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밤이면 부엉이도 유령처럼 보입니다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밤은 무섭지 않아’ 그림=헤리베르트 슐마이어, 주니어 김영사
‘밤은 무섭지 않아’ 그림=헤리베르트 슐마이어, 주니어 김영사
밤이 무서웠습니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었다는 지금도 밤은 내가 무서워하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대상입니다. 밤이 가진 그 어두움이 무서운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두움 속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는 유령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깜깜한 어두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위가 적막 속에 잠겨 있는 밤, 달빛을 받고 있는 나뭇가지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땅에 어른어른 비치는 그런 밤의 어두움이 더욱 무섭습니다. 유령들은 어둠과 소통하여 자신의 정체를 감쪽같이 그 속에 숨기는 데 성공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눈에는 그들의 실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았으므로 우리들의 상상력에는 불이 댕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상상력에 힘입은 유령들이 가진 파괴력과 초월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 재생산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유령이 획득한 정체성의 모든 것들은 모두가 우리 인간들이 평소 선망하고 부러워하던 것들입니다.

우선 그것들은 무한대의 수명을 가집니다. 죽고 사는 것을 자기들 뜻대로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시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온갖 술수에 능통합니다. 선과 악, 그리고 성별 따위의 제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능력을 휘두릅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이마에는 황소와 같은 예리한 뿔이 솟아 있기도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치명적인 무기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입에서 불을 내뿜어 자신을 공격하려는 상대를 일거에 제압하고, 초토화시키거나, 절멸시킬 수 있는 무한대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령이란 이름이 생겨나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령이 먼저 후퇴하거나 비겁하고 누추한 꼴을 보인 적은 없습니다. 급기야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공격력과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유령뿐이란 것에 이구동성으로 동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에서만 살고 있던 그들이 이젠 세상 속으로 뛰어나와 수시로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토록 무한대의 능력을 가진 대상을 만들어 낸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지닌 선천적인 불안감과 나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우리는 언제 유령들로부터 전면적인 공격을 받게 될 것인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령들에 대한 가당치도 않은 상상력을 당장 정지시킬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유령 혹은 괴물들의 공격을 받게 되리라는 공포심에서 속 시원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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