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여성 지휘자요? 노 서프라이즈!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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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54·서울시향 예술감독) 씨와 123년 역사의 미국 보스턴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부지휘자가 된 성시연(31) 씨.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휘자 중에서 동양인과 여성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올해는 서울시향이 젊은 음악가들을 키우고 싶다”고 선언한 정 감독은 첫 순서로 성 씨를 초청했다. 성 씨는 9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향을 지휘하며 국내 첫 무대를 갖는다. 이를 앞두고 두 사람은 세밑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성교회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 연습실에서 만났다. 》

■ 마에스트로 정명훈, 차세대 지휘자 성시연 초청

9일 서울시향 지휘로 국내 첫 무대 선물

“독일 유학시절 정 선생님이 베를린 필을 지휘해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한국인으로서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감동은 말할 수 없이 컸어요. 유학생들이 모두 가서 봤어요. 당시 저는 피아노를 공부하면서 지휘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었지요.”

성 씨는 고교 졸업 후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를 거쳐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음악원에서 요르마 파눌라를 사사하면서 지휘를 공부했다. 2006년 게오르크 솔티 국제지휘콩쿠르 우승과 지난해 구스타프 말러 국제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해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성 씨를 1885년 창단된 보스턴심포니의 첫 여성 부지휘자로 발탁했다. 레바인은 오디션에서 “표현해 내는 컬러와 사운드가 아주 자연스럽고 훌륭하다”고 성 씨를 극찬했다.

“여성 지휘자요? 한마디로 ‘노 서프라이즈(No Surprise)’입니다. 으레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제 느낌에는 여자들이 남자보다 모든 게 앞장서 있다고 봅니다. 다만 지금까진 역사적인 배경에 눌려서 부각되지 못했던 것뿐이죠. 바이올린도 40년 전 여성이 시작했을 때 힘들다고 했어요. 지휘계도 수십 년 후엔 여성이 대세인 시대가 올 겁니다.”(정)

“예전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여성을 잘 뽑지 않았어요. 여성은 나약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사실 보스턴심포니에서 지휘할 때 여성이라서 벽을 느끼기보다 동양인으로서의 핸디캡이 더 커요.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의 음악적, 문화적 이해는 못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성)

이에 정 감독은 “나도 처음 피아노를 치고, 지휘를 할 때 인터뷰에서 ‘어떻게 동양인이 서양음악을 알게 됐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며 “동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처음 하는 게 힘들겠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성 씨는 독일에서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크리스티안 틸레만,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등의 지휘 리허설을 보면서 실력을 키워 왔다. 정 감독도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와 달리 지휘는 한 스승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며 “남의 스타일을 따라 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휘자가 실수하면 청중은 몰라요. 그러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가 다 알지요. 정말 창피한 일입니다. 옛날처럼 명성 있는 지휘자라고 해서 단원들이 납작 엎드려 있지 않아요. 이제는 그런 게 안 통하지요. 지휘자는 실력이 중요합니다. 리더십과 음악성의 균형과 업그레이드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합니다.”(정)

“현재 보스턴 심포니에서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의 리허설과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게 있어요. 인품과 성격, 지휘대에 섰을 때 풍겨 나오는 광채(아우라)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앞에서 한없는 겸손과 절제를 드러내는 정 선생님의 지휘 모습을 무척 좋아합니다.”(성)

서울시향 예술감독 취임 이후 베토벤과 브람스 시리즈를 해 왔던 정 감독은 올해는 말러, 브루크너, 바그너 등을 연주하겠다고 밝혔다. 젊은 연주자와 지휘자를 과감히 무대에 세우고, 드레스 리허설을 무료 개방하는 등 청소년 교육프로그램도 대폭 늘릴 예정이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자신을 시향 예술감독으로 초빙했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서도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 감독은 “이 당선인의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서울시향은 내년에 새로운 콘서트홀에 입주하게 됐을 것”이라며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키우겠다는 결단을 내렸던 분인 만큼 앞으로도 음악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 씨는 7월 보스턴 심포니 홀과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보스턴 심포니 데뷔 공연을 가질 예정이며, 로테르담 필하모닉, 밀워키 심포니, 밤베르크 심포니 등도 지휘할 예정이다. 이번 서울시향 공연에서는 쿠르타그의 ‘석판’(아시아 초연), 슈만의 피아노협주곡 a단조(협연 세르히오 티엠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지휘할 예정이다. 세 곡 모두 성 씨는 처음 지휘해 보는 곡. 정 감독은 후배 지휘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괜찮아. 누구에게나 시작하는 때가 있는 법이지. 용기를 내.” 1만∼5만 원. 02-399-1111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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