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詩詩한 것들에 생의 절반을 쏟아버린… ‘열애’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13분


◇ 열애/신달자 지음/124쪽·7000원·민음사

“때로 시를 놓아 버릴까 하는 심각한 좌절도 경험했다”는 신달자(64·사진) 시인. 등단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시는, 쓸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만두고 싶어질 만큼 아픔을 주는 대상이었다. 그런 신 씨가 다시 시와의 사랑에 나섰다. ‘문학 문학 문학/누런 겉옷을 벗기면 시가 넘실거린다/현기증을 일으키게 쏟아져 나오는 시 시 시 시 시들…위태로운 빌딩으로 서 있는 월간지 시집 그리고 계간지/사람들은 이것을 공기 정화라고 부르나/폐유 한 방울이라고 부르나’(‘문학이 쌓인다’ 중에서)

못 볼 것 다 본 상대에 대해선 소녀처럼 결 고운 사랑가를 부를 수 없는 법. 시인들이 시어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아내는지 잘 아는 신 씨의 눈에, 잡지에 실린 시는 활자로만 보이지 않는다. ‘고 시인의 안창살/김 시인의 등심/장 시인의 갈비뼈/박 시인의 내장.’

결국 흉한 모습, 모난 모양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감싸안는 것이 사랑임을 아는 시인. 그래서 예쁘고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인생의 장면들을 그대로 시로 전한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 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합니다/답답한 것이 산 낙지뿐입니까/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버린 여자도/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냅니다’(‘저 거리의 암자’) 산 속 깊은 곳에서 마음을 추스르는 것뿐 아니라 세상으로 나와 온몸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도 ‘수행’이라는 것을 시인은 전한다. 왜냐 하면 그 스스로 ‘무슨 강이든 제 등뼈를 눕혀야 건널 수 있다’(‘강을 건너다’ 중에서)는 것을 알고 난 뒤이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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