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우리는 디지털기기 ‘대올림’ 패밀리

  • 입력 2007년 9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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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디지털 일기…‘얼리 어답터’가 착한 아들 되는 법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나오면 헌 제품은 중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휴대전화가 고장났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휴대전화기를 사려고 마음먹었던 나는 쓰던 ‘스카이 IM-7440’ 모델을

아버지에게 보여 드렸다. 아버지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거 내가 좀 쓰자.”

그 후 MP3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PC 등을 아버지에게 드리자 신기해하셨다.

디지털 카메라가 뭔지도 몰랐던 아버지는 요즘 무슨 디지털 카메라가 좋은지 나에게 물어보신다.

성능부터 가격까지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면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치 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빠의 디지털 일기… 중년 ‘트렌드 세터’로 살아가는 법

디지털? 나와 관계없는 딴 세상이었다.

받고 거는 게 전부였던 내 휴대전화기가 말해 주듯….

그런데 2년 전 휴대전화기가 고장 난 후 변화가 찾아왔다.

평소 디지털 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에게 무심코 “휴대전화기 좀 바꿔야겠다”고 말한 후

아들은 자신이 쓰던 것을 나에게 써 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어차피 새것을 사도 전체 기능의 절반도 사용 못할 텐데 중고면 어떠냐.

냉큼 받았다. 나보다 친구들이 더 좋아했다. “최신형 나도 한 번 써 보자”라고.

얼마 전 아내에게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배운 후 친구에게 시도해 봤다.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이 친구 웃기네…. 완전 신세대야.”》

○ 디지털 주고받기

등을 맞댄 이대헌(68), 이강석(37) 씨 부자에게서는 디지털 ‘향기’가 난다. ‘손목 휴대전화기’를 찬 아들과 일본 브랜드인 ‘고진샤’사의 노트북 PC를 든 아버지가 하얀색 소니 최신형 ‘NW-A800’ 시리즈 MP3플레이어를 함께 듣고 있다. “무슨 음악을…”이라고 묻기도 전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넣어준 영어회화 파일이에요.”

‘중년 트렌드 세터’로 살아가는 이대헌 씨의 모습은 신세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노트북으로 내려받은 동영상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다. 지식 검색은 물론이고 관심 분야인 종교계 뉴스를 보며 게시판이나 누리꾼들의 댓글도 확인한다. 여기에 영어 공부를 위해 초소형 MP3플레이어를 들고 다니고,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한다.

그의 기기들은 아들로부터 받은 것. 그는 “처음엔 비싸고 전체 기능의 절반도 몰라 디지털 기기를 멀리했지만 지금은 아들 덕분에 세상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노트북을 보여 줬더니 다들 자녀들에게 물려받겠다고 그랬다”고 말했다.

아내 역시 딸에게 후지쓰 노트북과 MP3플레이어를 물려받고 동네 구청에서 하는 컴퓨터 인터넷 강좌 6개월 수강증을 끊었다. 그는 “아내는 아들에게 e메일로 안부를 전하고 개인 홈페이지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변화는 ‘얼리 어답터’ 아들이 만들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 마니아였던 이강석 씨는 현재 50개가 넘는 디지털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강석 씨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기기는 ‘스카이’ 휴대전화기부터 ‘고진샤’사의 소형 노트북, 삼성 옙 멀티플레이어, 소니 MP3플레이어, 캐논 익서스 디지털 카메라 등 다양하다. 그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경험을 드리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 세대 간의 단절 치유? vs 잔반 처리하는 중년?

‘대올림’ 시대가 온 것일까? 가난했던 시절 부모님이나 형제로부터 옷을 물려받았던 ‘대물림’ 문화와는 반대로 휴대전화기, MP3플레이어 등 디지털 기기를 윗세대가 아랫세대로부터 받는 ‘디지털 대올림’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기기 마니아들은 과거 새 기기를 사기 위해 헌 기기를 인터넷 중고 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최근엔 디지털 문화에 민감하지 않은 부모님에게 물려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기성세대는 얼리 어답터나 신제품 등 ‘속도’ 위주의 디지털 문화에 소외감을 느끼지만 자녀들에게 받은 중고 기기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경화(29·여) 씨는 1, 2개월에 한 번씩 휴대전화기를 바꾸는 얼리 어답터. 그 덕분에 아버지 윤동용(59) 씨의 휴대전화기도 수시로 바뀐다. 이 때문에 늘어난 것은 부녀간 문자메시지 대화다.

‘감사 감사’(감사합니다)나 ‘열공’(열심히 공부) 같은 줄임말부터 ‘ㅋㅋ’(웃는 표현) 등 신세대가 쓰는 문자메시지를 비롯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셀카’(셀프카메라)도 딸에게 보내는 것. 노트북을 물려받은 어머니는 윤경화 씨에게 사진 파일이 첨부된 e메일을 자주 보낸다.

윤경화 씨는 “어머니에게 택배를 보내 드리면 실시간으로 잘 받았다는 문자메시지가 올 정도로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며 “쑥스러운 애정 표현도 문자메시지나 e메일로 쉽게 나눌 수 있어 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노트북을 세 번이나 물려드렸다”는 대학생 이형진(26) 씨는 어머니와 ‘일드’(일본드라마)를 함께 보는 사이가 됐다. 이 씨는 “일드 몇 편을 내려받아 노트북에 넣어 드렸더니 이젠 ‘노다메 칸타빌레’, ‘꽃보다 남자’ 등을 직접 내려받으실 정도”라고 말했다.

중년들에겐 새로운 집단과의 만남도 즐겁다. 최근 아들에게 디지털카메라와 노트북을 물려받은 직장인 강형택(51) 씨는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등산 동호회에 가입했으며 등산 가서 찍은 사진을 인터넷으로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강 씨는 “40, 50대 동호회 회원 대부분이 자녀들에게 물려받은 디지털 기기를 자랑하며 친목을 다진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 씨는 “디지털 대올림 문화는 세대 간 디지털 격차를 좁힐 수도 있지만, 신세대들이 새로운 제품을 사기 위해 부모님에게 계속 중고 제품을 떠넘겨 세대차를 더 벌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이 추천하는 대올림하기 좋은 디지털 기기▼

아무거나 물려받으면 OK?

넘쳐나는 디지털 기기, 아무리 디지털 대올림 문화가 좋다지만 아무거나 다 받을 순 없는 법. 포털사이트 ‘드림위즈’의 이찬진(사진) 사장이 사용하기 쉽고 감각도 신세대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디지털 기기 4개를 추천했다. ‘구닥다리 중년’이 아니라 ‘스마트한 중년’이 되고자 하는 아버지 어머니께 권해 드릴 만하다.

#니콘D80 DSLR 카메라

최근 젊은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DSLR 카메라’(일안반사식·렌즈 교환식 전문가용 카메라)는 촬영법이 복잡하지 않고 가격대도 다양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삼성 YEPP시리즈 MP3플레이어

바쁜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간에 MP3플레이어를 이용해 음악을 듣거나 어학공부를 하는 데 많이 사용. 최근에는 디자인이나 조작법이 간단해지고 크기도 작아져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디지털큐브 M43시리즈 PMP

요즘 지하철에서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로 DMB를 보거나 동영상을 감상하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PMP는 나이를 떠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정보기술(IT)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출시된 디지털큐브의 ‘M43 NAVI’를 비롯한 ‘PMP 내비게이션’은 길안내 도우미뿐 아니라 차 안 ‘엔터테이너’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입니다.

#아이폰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폰은 여러 기능을 갖고 있어 통화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과거 ‘중·장년층’용 휴대전화기는 다른 기능은 없이 ‘전화만 잘 터지면 좋다’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디자인뿐 아니라 가격, 성능까지 꼼꼼히 따져보고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실제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출시된 휴대전화가 중·장년층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폰은 아직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지만 곧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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