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히치콕 할리우드 진출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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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은 살아남았다. 죽은 병사의 손목시계처럼.”(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영화의 한 장면. 4명의 사내가 포커를 친다. 왁자지껄 즐겁지만 테이블 아래에는 시한폭탄이 있다. 시간은 흐르는데 낌새를 못 챈다. 3분, 1분, 30초…. 절체절명. “차나 한 잔 하러 가지.” 다들 우르르 나가버린다. 이게 뭐야. 관객을 쥐락펴락 했으나 극의 흐름과는 별 상관이 없었던 폭탄. 이제는 보통 명사가 된 스릴러의 기본 장치. 히치콕 표 ‘맥거핀’이다.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영국 출신. 운동은 젬병. 화가 나면 정신없이 먹어대는 먹보였다. “(만화로) 배우를 맘대로 찢어버릴 수 있다”며 월트 디즈니를 부러워했던 그 독선. 평생 외모 콤플렉스와 고독에 시달렸다. 조롱 섞인 말투 탓에 비평가와도 불편했다. 그러나 1938년 7월 14일 할리우드 진출 계약. 1960년대 비틀스보다 한참 앞선 ‘영국 침공’의 서막이었다.

히치콕의 진가는 관객들이 먼저 알아봤다.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했다. TV 시리즈는 ‘당대의 전설’(영화학자 도널드 스포토)이 됐다. ‘이창’ ‘현기증’ ‘사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새’…. 그는 영화에 스릴러란 새로운 장르를 이식했다.

그를 예술가 반열로 끌어올린 건 프랑스 ‘누벨바그의 아이들’이었다. ‘새 물결’은 심술쟁이 B급 감독의 영화 장악력에서 작가정신을 발견했다. 히치콕 관련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히치콕과의 대화’를 쓴 트뤼포. “인류사에는 ‘불안의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카프카, 포 그리고 히치콕.”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혼을 갉아먹는 욕망의 갈등, 억압된 성의 분출을 스크린에 토해냈다. 일법통 만법통(一法通 萬法通·하나의 일에 통하면 많은 일에도 통한다). “히치콕의 영화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모두 아우른다.”(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

찬양이 넘쳤지만 이 뚱보 감독은 천진함을 잃지 않았다. “내게 영화는 케이크요. 맛있게 먹어주면 그뿐이라오.”

이 위대한 파티시에는 보기 좋은 케이크가 아닌 먹기 좋은 케이크를 구웠다. 자신이 만든 빵을 즐겁게 베어 문 관객을 사랑했다. 토토를 위해 영사기를 돌린 알프레도 할아버지(영화 ‘시네마천국’)처럼.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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