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문화 청문회라도…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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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스캔들(추문)과 대중은 연예계가 오래전부터 손꼽아 온 오락 흥행의 3요소다. 그러나 최근 그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스캔들을 흥행 요소로 꼽지 않는다. 소문도 ‘착한 소문’이어야 효과가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스캔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이제 추문은 스타의 가치를 갉아먹을 뿐이다.

연예계에서 가장 실감하는 것은 대중의 변화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눈과 귀가 밝아진 팬이 늘어나면서 의도를 가진 연출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음반기획자는 “예전에는 소수의 팬 그룹을 동원한 마케팅이 가능했는데 이젠 잘 통하지 않는다”며 “똑똑한 소비자 앞에 품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대선판을 보면 스캔들을 앞세웠던 예전 연예계를 보는 듯하다. 정치 행위가 대중에게 ‘개운치도 않고 감동도 없는’ 오락거리가 된 것이다.

야당 후보 경선에서는 두 명의 빅 스타가 검증의 이름으로 스캔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검찰도 의혹을 규명한다며 나섰다. 이쯤 되면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을 수준 낮은 오락물이다. 나라의 미래를 담은 비전이나 정책은 묻혀 버렸다.

범여권의 동향도 이합집산의 셈법이 난무하면서 안타까운 수준의 오락물이 돼 버렸다. 한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던 이들이 서로 비난하고 있다. 지지율 1∼2%에 불과한 이들이 앞 다투어 나서기 시작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자 정치적 생존에만 매달리는 것 같으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지금 대선판은 고인이 된 이주일 씨가 생전에 국회의원을 그만두면서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간다”고 했을 때보다 훨씬 더 코미디 같다. 우스꽝스러운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에게 믿음을 주진 않는다.

정치는 갈등 조정과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에는 감동이 따른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 연대나 제휴 등 다양하게 운신하는 정치는 그림 같은 감동을 준다. 또 “정치는 국가에 봉사하는 강력한 지성과 철저한 헌신에서 나오는 고귀한 목표를 위한 전진”(우드로 윌슨)이라는 말처럼 ‘큰 정신’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정치는 반(反)문화적이다. 유권자를 말초적 오락에만 묶어 둠으로써 스스로를 추락시키고 모두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 문화계에서 오락을 보는 눈이 바뀌고 있다. 뭔가 생각하게 하고 뭉클함이 남는 ‘지적 오락’ ‘감동 오락’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을 체험한 유권자들은 내면의 멋도 가늠할 줄 안다.

대선을 앞둔 12월 초 뮤지컬 ‘명성황후’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 윤호진 극단 에이콤 대표는 “대선판이 지금처럼 어지러우면 사전 홍보가 어려울 듯하나, 관객의 수준으로 보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문화의 향기가 후보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대선주자들이 보러 오리라는 기대도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말대로 대선주자가 공연장에 오더라도 진정성이 의심스럽긴 하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문화청문회라도 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런 행사를 통해서라도 관객이 정치를 수준 낮은 오락판에서 건져 낼 수 있지 않을까. 문화의 수준과 정치의 수준이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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