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두려움을 잉태하다…웰메이드 스릴러 ‘디센트’

  • 입력 2007년 6월 28일 03시 01분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말은 동양에만 있는 줄 알았다. 지하 3000m 아래 동굴 탐험을 떠나는 미국 여성 5명과 정체불명의 괴물만 등장하는 영화 ‘디센트’는 그런 통념을 보기 좋게 비웃는다. 남성은 거의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공포의 ‘성감대’를 정확히 건드리는 이 영화에서 괴물이나 죄의식보다 더 무서운 게 여성의 질투임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끔찍한 사고로 남편과 어린 딸을 한꺼번에 잃은 사라(쇼나 맥도널드)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주노(내털리 잭슨 맨도자)가 주선한 동굴 탐험에 참여한다. 육체적 한계상황을 통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 주노는 그런 사라를 돕는다며 일행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미지의 노선으로 끌고 가다 길을 잃고 만다.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지하 동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간을 닮은 육식동물들이다.

영화 속 동굴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 사라가 동굴 밑바닥에서 죽은 딸과 대면하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곳은 또한 모든 비극이 잉태된 끔찍한 진실의 공간이다. 모성애가 강하던, 그래서 좀 더 여성적이던 사라가 동굴 공간에서 점차 주노를 능가하는 여전사로 변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포의 어머니는 죽음’이라 하지 않았던가.

공포영화로서 ‘디센트’가 더욱 훌륭한 점은 상투적 결말을 뒤집어버린 마지막 반전에 숨어 있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바닥이 열리면서 추락하는 그 아득한 공포감. ‘디센트’는 공포의 원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영화다. 7월 5일 개봉.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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