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도 그의 손에선 다시 봄을 피운다

  • 입력 2007년 6월 20일 03시 08분


코멘트
이효리, 양파, 백지영, 아이비 등 여가수들의 히트곡을 잇달아 작곡한 박근태. 사진 제공 오렌지쇼크
이효리, 양파, 백지영, 아이비 등 여가수들의 히트곡을 잇달아 작곡한 박근태. 사진 제공 오렌지쇼크
여가수 컴백곡 잇달아 히트시킨 작곡가 박근태

엄밀히 말해 그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작곡가가 아니라 ‘구세주’였을지 모른다. 드라마 시청률 저조로 위기에 놓였던 이효리부터 ‘B양 비디오’의 주인공 백지영, 섹시스타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던 아이비, 그리고 6년 만에 컴백하는 양파까지. 단순한 신곡 발표를 넘어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들, 자연스레 발걸음은 작곡가 박근태(35)에게로 향했다. 그가 준비한 것은 기존의 이미지를 대체할 새로운 옷이었다. 2005년 이효리의 광고음악 ‘애니모션’을 시작으로 백지영의 ‘사랑 안 해’,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와 양파의 ‘사랑…그게 뭔데’까지 연속으로 여가수들을 가요차트 1위에 올린 그에게 어느덧 ‘여가수 컴백 전문 작곡가’라는 새 별명이 생겼다.

“‘재해석’이 필요한 가수들과 작업을 하고 싶었죠. 신인과 달리 기성 가수는 히트 공식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전 답습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 가수의 매력을 찾고 싶었어요.”

광고와 가요를 접목한 ‘애니모션’, 댄스 가수의 발라드 도전 열풍을 낳은 ‘사랑 안 해’, ‘알파걸’ 이미지를 도입한 ‘유혹의 소나타’ 등 여가수들의 노래는 히트를 넘어 새로운 유행 코드로 이어졌다. 작곡가 생활 15년째, 이론이나 육감이나 구력이 붙을 대로 붙은 것 아닐까?

“남자 가수든 여자 가수든 작업의 차이는 없어요. 전 ‘콘셉트’를 가장 중시해요. 해당 가수의 생김새, 목소리, 행동 등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디어가 뚝 떨어지죠. 그 후 악보를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요.”

가장 부담됐던 작품을 묻자 그는 “아이디어 내는 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라며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를 꼽았다. 백지영의 ‘사랑 안 해’ 역시 “가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아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다”며 “그러나 정작 본인은 발라드 곡을 부르기 싫다고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4년 룰라의 ‘백일째 만남’을 시작으로 젝스키스의 ‘폼생폼사’, 에코의 ‘행복한 나를’ 등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2000년 이후 티의 ‘시간이 흐른 뒤’, 조PD의 ‘친구여’ 등 해가 거듭될수록 더 의욕적이다. 한 해 수입을 묻자 “그냥 과분하게 돈을 벌었다”는 그는 어느덧 히트곡만 200곡에 이른다. 급변하는 가요계에 그만큼 적응을 잘한 탓일까?

“컴퓨터로 음악을 듣는 시대라서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귀를 끌어야 해요. 그래서 전 최근 음악은 잘 듣지 않아요. 내 음악의 뿌리는 1970년대고 스티비 원더, 아바 같은 그 시절 가수들의 음악만 듣습니다. 요즘 음악이 채워 주지 못하는 풍성한 아이디어 때문이지요.”

고교시절 교내 밴드 기타리스트 출신인 그는 오디션을 준비하다 음악적 지식이 부족한 것을 깨닫고 악보 그리기, 화성법 등을 독학했다. 그런 그도 “대중성만 추구한다”는 지적에 괴로워한다. 여기에 올해 초 발표한 문근영의 디지털 싱글 ‘앤 디자인’이 표절 시비에까지 휘말렸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그는 기획사 ‘오렌지쇼크’의 대표이사로 중국 대중음악계 진출도 계획 중이다. 원대한 꿈도 좋지만 그간 여자 가수 위주로 만났으니 남자 가수들 좀 달래야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휘성, 이루, 고유진 등 남자 가수들과 작업하고 있어요. 이참에 나보고 가수 해 보라는 말도 들었는데…하하. 전 여러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