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우리들 안의 외계인

  • 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8분


TV 미니시리즈 ‘X파일’을 탄생시킨 드라마 작가이자 제작자 크리스 카터는 캘리포니아 주의 벨플라워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 파도타기를 즐겨 ‘서핑’ 전문잡지 기고가로 일하던 그는 스물아홉 살에 디즈니 사장을 지낸 제프리 카젠버그에게 발탁됐고 1993년 시작한 ‘X파일’로 명성을 얻었다.

어떤 내적 경험이 태평양에서 파도타기나 즐기던 젊은이에게 외계인의 지구인 납치,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대면 등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했을까. 시리즈 초기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아주 작은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시절 우리 동네에서 겨우 몇십 분 떨어진 마을로 차를 몰고 놀러간 일이 있어요. 동네 술집에 들어갔는데 그 순간 나를 뭔가 위험한 존재, ‘낯선 사람(stranger)’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지더군요.…두려워서 도망치듯 빠져나왔죠. ‘X파일’에서 그려지는 외계인에 대한 공포는 그때 내가 느낀 바로 그 숨 막히는 두려움, ‘낯선 자’로 구별되던 기억에서 비롯됐습니다.”

한국에도 ‘낯선 이들’은 적지 않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1만6794명이다. 2001년 1650명이 국적을 취득했으니 5년 만에 10배의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불법 체류자를 포함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2006년 말 현재 42만4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일정한 세를 형성한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두려움은 외국인이 관련된 범죄를 통해 증폭된다.

최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한국인 여성 토막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범인인 중국인이 잡히기까지 인터넷에 오른 글들은 외국인들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불법 체류자들이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에 살고 있다는 행정력 부재에 대한 비판부터 특정 국가를 지칭하며 그 나라 출신은 싹쓸이해야 한다는 선동까지 쏟아졌다.

낯선 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나와 다르다’는 구별 짓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최근 한국여성개발원 김이선 연구위원 등이 태국 베트남 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 38명을 심층 인터뷰해 내놓은 연구보고서 ‘여성 결혼 이민자의 문화적 갈등 경험과 소통증진을 위한 정책 과제’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이 고유의 문화도 갖지 못한 존재로 취급될 때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놓는다.

“어느 날 시어머니와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프리카가 나왔어요. 옷 안 입고 팬티만 입고 나와서 춤추는 것을 보시고는 ‘너희 나라도 저러느냐?’라고 물으시더군요. 그때부터 친정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아요.”(베트남 여성)

“(아이의) 선생님은 한국 사람에게는 길게 길게 설명해요. 제게는 ‘으으’ 하고 말을 딱 끊고 걸어가요. 느낌이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거 같아요.”(태국 여성)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11일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수용시설 화재사건. 생존자들은 화재 초기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철창 너머에서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다고 주장한다. 철창부터 열면 수용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집단 탈주로 이어지리라는 우려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창 속에 갇힌 존재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공감을 갖고 있었어도 똑같은 위기 대처 반응이 나왔을까.

우리도 이 마을, 이 나라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외계인’이다.

정은령 사회부 차장 r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