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상품?고궁예식장?…창경궁‘일반인 궁중혼례 추진’논란

  • 입력 2007년 2월 7일 02시 56분


고궁에서 열리는 궁중혼례의 주인공이 된다면?

올해 들어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가 5월부터 주말마다 궁중혼례식을 대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최근 문화재의 활용 방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궁중혼례가 ‘고품격 문화상품이냐’, 아니면 ‘고궁의 예식장화냐’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창경궁관리소는 영조가 1759년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 절차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를 바탕으로 4월 7일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에서 궁중혼례를 처음 재연하고 5월부터는 이곳에서 일반인의 궁중혼례를 대행할 방침이다. 관리소 측은 현재 궁중혼례와 관련해 하루 10회 정도 예비 신랑 신부가 문의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문정전에서 열릴 궁중혼례는 조선의 왕실혼례인 가례의 여섯 절차 중 마지막 의식인 동뢰연(同牢宴·신랑과 신부가 절을 주고받은 뒤 술잔을 서로 나누는 잔치)을 재연하는 것으로 비용은 300만 원 선으로 예상된다.

혼례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로 선정된 ‘민족혼뿌리내리기시민연합’은 서울 전쟁기념관 궁중대례청에서 약 270만 원에 왕실전통혼례를 대행하고 있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궁중혼례에는 본래 음악과 무용이 없었지만 잔치 분위기가 나지 않아 당사자의 양해를 얻어 예식에 음악과 무용도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궁에서 축의금을 받거나 피로연을 열 수 없는 만큼 관리소 측은 하객에게 선물을 주거나 축의금을 계좌로 입금하는 대체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김정남 창경궁관리소장은 “문화재는 손때를 묻히면서 활용해야지 보존만 하면 낡고 썩어 간다”며 “고궁을 박제화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궁중혼례를 고품격 문화상품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화재 전문가 사이에서는 ‘고궁을 예식장으로 전락시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인 김동욱 경기대 교수는 “문정전은 임금이 정사를 보던 편전(便殿)”이라며 “문정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화재 위원은 “문정전은 왕과 왕비의 국장을 치른 뒤 신위를 모시던 혼전(魂殿)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며 “문정전에서 혼례가 열리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동뢰연은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서 열렸다. 문화재위원회 건조물문화재분과위원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궁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희화화된 구경거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의 저자인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문정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역사적 비극이 일어났던 곳”이라며 “이 사실을 알고도 이곳에서 결혼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고궁에서 실제 혼례를 대행하기보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궁중혼례를 정기적으로 재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창경궁관리소는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혼례식이어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질 것이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문화재청 궁능관리과 김종수 과장은 “이번 사업은 문화재위원회 승인 사항이 아닌 창경궁 자체 사업이지만 예상되는 문제를 현재 면밀히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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