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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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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한국정보사회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구축된 이 시스템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 합격자 7만4000명을 비롯해 한국 역대 인물 총 7만8000명에 관한 종합 정보와 조선시대 관직명 정보 1000개, 성씨 본관 정보 600개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흥미로운 자료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서 ‘17’은 특별한 숫자다. 문과, 무과의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모두 17세였던 것. 1584년(선조 17년)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박호와 1457년(세조 3년) 급제한 남이 장군이 그 주인공. 장원이 아닌 과거시험 최연소 급제자는 1866년(고종 3년) 별시에서 병과(丙科) 3등으로 합격한 만 13세의 이건창(李建昌)이었다.
그러나 천재는 불운했다. 박호는 불과 10여 년 후 임진왜란 때 전사했다. 남이의 경우는 더 극적이다. 28세에 병조판서에 오르며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처형됐다.
그렇다면 고려부터 조선까지 과거에 가장 많은 급제자를 낸 형제는 누구일까. 조선 인조 때 6형제가 급제한 원식(元植) 가문이 최고고 고려때 우홍득(禹洪得) 홍수(洪壽) 홍강(洪康) 홍부(洪富) 홍명(洪命) 등 5형제 급제 집안은 6가문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조선시대 역대 왕 중 가장 많은 부인을 거느렸던 왕으로 세종을 꼽고 있지만 사실은 각각 12명의 정비와 후궁을 거느렸던 태종과 성종이다. 세종은 ‘겨우’ 6명.
가장 ‘간이 컸던’ 관리는 조선 중기 문신 정태화로 인조 때 영의정에 오른 후 37번이나 사직상소를 올린 전무후무한 기록이 있다.
한편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출신지는 서울을 제외하면 무과는 경기, 문과는 서북과 영남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무과 합격자의 출신지는 수원, 양주, 광주(廣州), 여주 순이며 문과 합격자는 정주, 안동, 평양, 상주 순이다. 조선시대에는 서북 출신이 천대받았다고 알려졌으나 과거 합격자 수를 보면 이 같은 속설이 무색해진다.
역대 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은 일반인에게도 공개되며 더 편리한 이용을 위해 인물 검색창을 삽입할 수 있는 검색 모듈도 별도로 제공한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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