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 입력 2007년 2월 3일 03시 00분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데이비드 베레비 지음·정준형 옮김·510쪽·2만원·에코리브르

14년 전 학원 선생님이 생일 선물을 주셨다. ‘김건모 2집’. “레게음악 별로 안 좋아하는데…”라는 기자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이거 X세대의 필수품이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90년대 초중반 ‘X세대’는 10대와 20대를 상징하는 코드였다. TV나 라디오에서는 ‘전통에는 관심이 없고 몇 끼를 굶더라도 캘빈클라인 청바지를 입는다…’ 등등 X세대의 특징을 내보냈고 ‘역사에 관심 많고 면바지를 입었지만’ 나는 졸지에 X세대로 분류되어 내 기호와 무관한 선물을 받았다. 당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은 아마도 거주 지역 때문에 졸지에 철딱서니 없는 ‘오렌지족’이 된 압구정동, 청담동의 20대였을 것이다.

집단에 따른 개인의 분류는 역사 이래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다. “충청도 사람은 느리다”느니 “경상도 사람들은 급하다”느니 말하지만 충청도 출신이지만 빠른 사람도 있고 경상도 사람이지만 느긋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저자인 데이비드 베레비는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의 이론 ‘근본 속성의 오류’를 빌려 “인간은 스스로에게는 그와 같은 일반화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남들은 분류화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으로 다가온다.

이와 관련해 2004년 5월 르완다에서 벌어진 사건은 상징적이다. 투치족 난민들이 후투족을 피해 소부의 수녀원으로 도망쳐오자 게르트루드 수녀원장은 후투족 민병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수백 명의 투치족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수녀원장은 투치족 수녀들만은 보호했다. ‘후투족 대 투치족’이라는 분류에서 ‘기독교인 대 비기독교인’이라는 분류로 전환된 것이다.

심리학자인 존 달리아 댄 베이트슨은 프린스턴신학교의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다른 건물로 가는 도중 길에 쓰러진 낯선 사람과 마주치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시간이 촉박한 그룹에서는 10%가 피해자를 돕기 위해 길을 멈추었지만 시간이 적당한 그룹에서는 40% 이상이 멈추었고 시간이 넉넉한 그룹에서는 60%가 멈추었다. 학생들 모두 미래의 사제들이라는 점과는 상관없이, 영향을 미친 것은 오직 시간의 압박이 어느 정도였냐는 것이었다. 저자는 수많은 실험 결과 X라는 특징을 가진 사람은 Y라는 부류의 인간이며 따라서 Z라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가정은 맞지 않았다고 말한다.

통상적인 분류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준 저자가 내놓은 결론은 분류 ‘코드’에 판단을 맡길 것이 아니라 코드를 버릴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분류 ‘코드’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이를 통해 세상을 나누고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류의 불행한 결과들, 즉 제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 학살이나 코소보 사태 등은 정치인들뿐 아니라 이러한 잘못된 분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체스터턴은 인간사의 변화를 ‘칠하지 않은 담장’에 비유한 적 있다. 하얀 담장은 누군가 계속해서 같은 색으로 칠하지 않으면 곧 색이 변하지만 사람들은 담장에 하얀색을 칠해 ‘하얀 담장’만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관념이라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원제 ‘Us and Them’(2005년)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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