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38>番

  • 입력 2006년 12월 8일 04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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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番(번)’의 갑골문은 ‘짐승의 발바닥’, 혹은 ‘짐승의 발자국’을 나타낸다. 짐승이 걸어간 발자국은 두 가지 형태를 갖는다. 맹수의 발자국은 두 개씩 나란히 정렬되어 진행된다. 다시 말하면 왼쪽 앞발의 발자국 바로 옆에 오른쪽 뒷발의 발자국이 찍히며, 오른쪽 앞발의 발자국 바로 옆에 왼쪽 뒷발의 발자국이 찍힌다. 따라서 평행을 이루는 두 개의 발자국이 열을 짓게 된다. 맹수가 아닌 경우에는 좌우가 교차되어 열을 짓는다.

이에 따라 ‘番’에는 ‘짐승의 발자국’이라는 뜻이 있으며, 맹수의 발자국 모양에 따라 ‘차례, 횟수’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그리고 ‘차례로 임무를 맡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맹수의 성격 때문에 ‘날래다’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맹수가 아닌 짐승의 발자국은 서로 교차되어 있으므로 이로부터 ‘갈마들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여러 짐승의 발자국이 섞여 있는 모습에서 ‘번성하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고대에는 짐승이 밭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울타리를 둘렀다. 따라서 짐승의 발자국은 울타리 부근에 가장 많이 생겼다. 이에 따라 ‘番’에는 ‘울타리’라는 의미가 있다. 울타리는 일정한 지역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이런 의미가 복합되고 확산되어 ‘番’은 ‘짐승의 발자국이 많은 지역’, 즉 ‘오랑캐 지역, 다른 나라’라는 뜻을 갖는다.

‘番’은 ‘센머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검은머리 사이에 흰머리가 교차돼 있기 때문이다. ‘番號(번호)’는 차례로 부른다는 말이다. ‘號’는 큰 소리로 부른다는 뜻이다. ‘當番(당번)’은 ‘차례, 순서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番地(번지)’는 원래 ‘울타리로 둘러싸인 일정한 지역’이라는 말이다. ‘地’는 ‘땅 지’자인데, 일정한 넓이를 가진 지역이다. ‘土’는 ‘흙’ 자체를 나타낸다. 그래서 ‘地’는 ‘地域(지역)’이라는 말에 사용되고, ‘土’는 ‘黃土(황토)’라는 말에 사용된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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