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입력 2006년 11월 1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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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김용규 지음/334쪽·1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따뜻한 보리수차 한잔에 곁들여진 마들렌이라는 빵의 향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해 문학사상 가장 유명해진 이 향기는 소설의 주인공 마르셀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려주는 매개체이자 생의 의미를 일깨우는 ‘강렬한 쾌감’의 원천이다.

지루한 일상에 지친 마르셀은 이 향기를 통해 자신이 잊고 지내던 행복한 유년시절 특별한 장소의 기억뿐 아니라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왜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일까.

‘알도와 떠도는 사원’과 ‘지식을 위한 철학통조림’ 등의 저서를 통해 어려운 서양철학사상을 구체적 삶의 지혜로 녹여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온 저자의 질문은 짓궂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면 100여 쪽으로 충분할 터인데 프루스트는 왜 3000여 쪽이나 되는 책을 썼을까.

저자는 그에 대한 해답을 베르그송의 공간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철학에서 끌어낸다.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의식에서 서로 다른 공간을 동시에 떠올리는 ‘공간의 병치’ 현상을 다룬 베르그송을 떠올린다. 저자는 여기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현존하는 개인의 주체적 인식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파괴적인 시간의 바퀴에 깔릴 운명을 구원하는 ‘초시간성’을 획득하는 인간의식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을 포갠다.

“프루스트가 말하는 되찾은 시간이란 과거와 현재, 공간과 공간이 겹치면서 만들어진 시간적·공간적 입체상을 통해 삶의 진실이 드러나는 시간인 것입니다.”

13편의 문학작품에 담겨 있는 주제의식을 심오한 서양철학을 통해 새롭게 형상화한 이 책의 마력은 프루스트가 문학을 통해 구사한 이 같은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전략을 반대로 문학작품의 해석에 적용한 데 있다.

저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별빛에서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는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부버와 교감을 읽어내고, 카뮈의 ‘페스트’ 속 사막의 풍경에서 서영은의 소설 ‘사막을 건너는 법’과 이어진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또 괴테의 ‘파우스트’와 헤세의 ‘데미안’처럼 너무도 익숙한 작품의 주제에 나타난 신과 악마,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서 자기실현을 통해 구원을 얻는 ‘현대적 인간’의 의미를 니체와 프로이트라는 프리즘을 통해 새롭게 규명했다.

만일 이 책을 논술교과서로 읽을 이들이 있다면 최인훈의 ‘광장’에 관한 글에 유념하기 바란다. 저자는 그 유명한 ‘광장’과 ‘밀실’의 상징성을 풀어내면서 코케인, 아르카디아, 천년왕국, 유토피아라는 서양 이상사회의 계보연구를 통해 사유의 폭을 확장하고, ‘광장 없는 밀실’, ‘밀실 없는 광장’, ‘밀실과 광장이 공존하는 푸른 광장’의 개념을 해나 아렌트의 사적 영역, 사회적 영역, 공적 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사유의 깊이를 심화시킨다.

여기에 평등과 도덕을 강조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자유와 풍요를 강조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아틀란티스’의 대조를 통해 소련과 미국의 세계관을 읽어내는 현실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진짜 백미는 이명준이 꿈꾼 ‘푸른 광장’에 대한 절망과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의 희망을 연결시킨 시공간의 대위법적 상상력일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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