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지 사람들도 프라다를 입는다?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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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잡지사 신입사원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한 장면. 정말 패션잡지 에디터들은 영화처럼 프라다를 입을까? 사진 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패션잡지사 신입사원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한 장면. 정말 패션잡지 에디터들은 영화처럼 프라다를 입을까? 사진 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인기다.

지난해 ‘김삼순’이 ‘파티시에(제과 기술자)’를 유행시켰다면 ‘악마는…’은 패션잡지 에디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악마는…’은 사실 패션잡지사라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신입사원의 고군부투기인데 여성들은 줄거리 자체보다 샤넬, 에르메스, 구찌, 프라다 같은 명품 옷과 가방에 더 시선을 둔다.

그렇다면 정말 영화 속 패션 잡지 에디터들처럼 실제 에디터들도 ‘프라다’를 입을까?

겉이 화려할수록 그 속은 ‘가시밭길’이라는 직업의 속성이 여기에도 적용될까?》

■ 옷보다 일에 파묻힌 그녀들 ‘무엇으로 사는가’

○ 의상 화보를 만드는 것이 주된 일

패션잡지 ‘보그’의 이정금(30) 에디터는 한 달 중 요즘이 가장 바쁘다. 매월 13일이 기사 마감일이라 며칠 내로 화보 촬영은 물론 원고도 끝내야 한다. 특히 의상 화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패션 에디터만의 독특한 영역이고 핵심적인 역할이라 가장 신경이 쓰인다.

12∼14쪽 의상 화보를 만들기 위해 모델, 사진가,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섭외하고 옷을 협찬해 줄 회사들까지 접촉해야 한다. 촬영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그녀 몫이다.

촬영 전날이 되면, 협찬을 의뢰해 놓은 업체들을 한 곳씩 방문해 촬영할 옷들을 고른다. 하루에 15∼20업체를 다니는데, 아침 일찍 출발해도 돌아오면 늦은 밤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진가 스튜디오로 옷들을 가지고 가서, 내일 어떻게 코디해서 사진을 찍을지 정하고 옷도 옷걸이에 걸어 정리해야 한다.

6년째 매달 반복하는 일이고 촬영 날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도 전날이면 잠을 설치기 일쑤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 패션업계 영향력, 점점 커져

패션지 ‘코스모폴리탄’ 이청순(35) 에디터는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트렌드 분석을 공부하고 귀국한 후 ‘마리 끌레르’를 거친 10년차 베테랑. 그녀는 국내 패션 에디터의 위상 변화를 이렇게 말한다.

“10여년 전 만해도 패션 에디터가 별 다른 영향력이 없었어요. 하지만 브랜드가 많아지고 명품, 패션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면서 제품 홍보가 치열해지자 패션 에디터에 대한 기대도 커졌지요. 이제 패션 에디터는 디자이너 못지않게 패션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면서, 업계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씨는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바쁜 생활이 힘들고, 서민들이 손쉽게 살 수 없는 고가의 제품을 포장해 소개해야 하는 일 자체에 회의를 느껴 잠시 전업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감각을 키워 같은 돈으로 잘 차려 입을 수 있도록 돕는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만족한다. 또 아이디어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도 적성에 맞는다.

패션지 ‘바자’ 창간 때부터 에디터로 일하다 현재는 패션 쇼핑몰 슈가 팩토리(www.sugarfactory.co.kr)를 운영하고 있는 배영(37) 씨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에디터를 선택한 이유를 “이미 만들어진 옷에 내 의견을 더해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짧은 시간에 패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만하다는 것.

○ 옷 잘 입으면 더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프라다’를 입을까.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입사 2, 3년차 때는 옷 욕심이 많아 명품으로 부지런히 멋을 내곤 하지만, 연차가 높아질수록 쇼핑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겉은 화려해도 결국 월급에 목을 매는 직장인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명품을 즐길 만큼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일단 보고 접하는 정보가 풍부하고 특별 할인 혜택이 많은 데다 옷차림도 자유로운 직업이기 때문에 확실히 ‘멋쟁이’는 많다.

‘코스모폴리탄’ 이청순 에디터는 “직접 옷을 잘 차려 입는 것과 실제 잡지 화보를 위해 스타일링을 하는 감각은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다른 직업에 비해 패션감각이 발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성주 사외기자 yamu72@lycos.co.kr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패션에디터의 빛과 그늘

패션지 에디터로 일을 하다 창업한 P 씨는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화려한 행사장과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고, 연예인과 어울릴 기회도 많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허영심이 생기기 쉬운 직업”이라고 전한다. 한 패션지 에디터 5년차인 C 씨는 “보는 것이 많은 만큼 쓰는 돈도 많아 늘 쪼들린다”고 고백한다.

또 다른 패션지 에디터 8년차 C 씨는 “한 달에 열흘 정도 야근이나 밤샘을 해야 하는 불규칙한 생활은 참을 만하지만 연차가 올라갈수록 대기업 친구들과 급여 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처우가 너무 낮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연봉은 매체마다 천차만별이다. 대략 초봉이 2000만∼3000만 원대로 적은 편은 아니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서는 절대 많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근, 밤샘, 외근 등이 많아 결혼해서까지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에디터들의 주 연령대는 28∼33세로 높지 않다.

‘악마는…’의 악마로 상징되는 편집장(치프 에디터·chief editor)까지 성장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30대 초중반에 전업이나 이직을 많이 한다.

■ 패션기자 되려면

최근 한 대기업 계열사가 운영하는 패션잡지 공채 경쟁률이 500 대 1이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매체마다 채용방법은 다르지만 신문사나 대기업 계열사 패션지는 신입사원 채용 시 주로 공채를 한다. 보통 해당 잡지나 홈페이지 등에 모집 공고를 내기 때문에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중소규모 패션지의 경우는 공채도 있지만 특채도 많다. 보조(어시스턴트)를 거쳐 정식 기자로 채용되기도 한다. 잡지나 홈페이지 인턴 공고를 보고 지원하면 된다.

의상학이나 관련 분야를 전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현재 패션 에디터의 40∼50%만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했다는 게 업계 이야기.

비전공자라고 해도 옷, 구두, 가방 등의 패션 아이템에 관심이 많아 나름대로 코디 감각이 있고 유행에 민감하면서 ‘끼’까지 있다면 기본 소양은 합격점이다.

문장력은? 일반 취재기자와 달리 의류 화보를 진행하는 패션 에디터는 글 쓰는 능력보다 그림 만드는 재주가 더 중요하다.

박성주 사외기자 yamu72@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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