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대비하기 30선]<4>나이듦의 기쁨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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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친밀한 관계가 필요한 동시에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90세 된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는 고요함이 필요하단다. 젊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단다. 책을 읽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하고, 애완견을 산책시키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사막을 바라보기도 하지.” ― 본문 중에서》

3년 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길에 동성애자 거리로 유명하다는 ‘게리 스트리트’를 지날 기회가 있었다. 저만치 백발성성한 할아버지 두 분이 정답게 팔짱을 낀 채 거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노인들 사이에도 사랑과 우정이 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던 순간의 낯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노인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정작 노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지한 건지.

미국에선 1945년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 10명 가운데 1명은 100세까지 장수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거리를 활보하는 이 5명 가운데 1명은 ‘노인’인 세상! 단순히 여러 장의 달력을 넘기게 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활력 넘치는 건강한 노후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오늘의 장수 혁명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길임이 분명하다.

무지(無知)와 미지(未知)의 교차로에서 서성이고 있는 덕분인가, 불안감과 상실감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는 진정 ‘(인생 후반기의)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으로 ‘나만의 보너스 시간’을 어떻게 채워 갈 것인지, 흥미진진한 심리학적 로드맵을 펼쳐 보이고 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감에 가장 좋은 안내자는 피차 동일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좌충우돌 시행착오일 것이요, 함께 나이 들어 가는 이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일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판검사에서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이혼의 고통에서부터 해로의 안도감을 누린 이까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나이듦은 진정 신선한 충격이요 찬란한 체험”이라고.

10인 10색의 휘황찬란한 인생역정 속에서 12가지 길을 찾아낸 건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탁월한 감각과 예리한 통찰 그리고 재치 있는 위트 덕분이다. 12가지 길은 다시 3갈래로 묶여 첫째는 ‘나만의 시간에 도달하기’, 둘째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답을 찾기’, 셋째는 ‘인생의 굴곡을 넘어 돌봄의 사랑을 실천하기’란 이정표가 달려 있다.

물론 이 책은 성공담에 해피엔딩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정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누구나 극심한 혼란과 뼈아픈 좌절을 경험했다는 사실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용기와 오기의 주인공들이란 사실이다. 황혼 이혼의 배신을 딛고, 시한부 인생 선고를 넘어, 실직자란 낙인에도 아랑곳없이 과거의 안락함에 연연하지 않고서 말이다.

솔직히 가족·친지의 기대, 이웃·직장의 시선을 중시해 온 우리네로선 내밀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또 다른 일에 도전하는 책 속 주인공들이 부럽기만 하다. 더불어 새롭게 우정을 이어 가고 새삼 사랑의 세계를 탐험하며 늘 거기에 있었던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발견하는 이들과 동병상련하게 되기도 한다. 책을 덮는 순간 50세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와 더불어 나눌지,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란 희망이 서서히 번져 갈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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