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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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로테 퀸 지음·조경수 옮김/248쪽·9500원·황금부엉이

“쉿!”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장인 도로테아 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왼손을 둥글게 말아 귀에 대고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감싸 쥐며 말을 시작한다.

“지금 많은, 아주 많은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강당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교장의 감동스러운 연설이 시작되려는 찰나다.

그러나 뒤편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저자는 진부하기 짝이 없다고 진저리를 친다. 저자의 아이 넷이 입학할 때마다 교장은 똑같은 연설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사는 놀랄 만큼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그 까닭이 서비스가 독점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른 곳에서는 서비스의 공급자가 냉정하게 평가받지만 학교는 그 수혜자만 평가될 뿐 공급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 학교와 교사들만이 상황을 매우 기괴한 방법으로 뒤집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교사에 대해 우리가 모두 알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이 책에서 다 털어놓았다. 책을 읽다 보면 독일의 교육현실이 어쩌면 이렇게 한국과 비슷한지 놀랄 정도다.

교사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풍자와 비판은 때로 코믹하고 대체로 독하고 모질다. 저자는 “교사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직업”이라고 일갈한다. 다른 직업도 그 직업의 종사자들에게 힘든 요구를 하지만, 유독 교사가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댄다는 것. 별 큰 위험 없이 가족을 부양하고 위기에도 안전한 직업은 학교 교사밖에 없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다른 사람의 버릇없는 자식을 돌보는 이런 끔찍한 직업을 가질 사람이 자기들 말고 거의 없을 거라고 한탄한다. 학교라는 파산한 상점을 구제하기 위한 합리적인 긴급조치는 오로지 교사 이익단체의 반대로 실패하고 무기한 연기된다.

학교의 체험 교육법, 열린 교육도 저자의 공격 대상에 올랐다. 저자는 이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머리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 감정의 지껄임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무능한 교사 때문에 고생스러운 건 학생뿐만이 아니다. 엄마들은 자녀가 담임선생과 잘 지내도록 하려고 학급비 몇 년치를 기부하고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매주 책 읽어 주는 어머니로 봉사하면서, 왜 학생 수가 20여 명밖에 안 되는 학급에서 교사가 그 일을 직접 못하느냐는 질문을 꾹 참아야 한다.

저자가 “교사들은 입에서 냄새가 나고 항상 너무 바싹 다가온다”며 옷차림까지 싸잡아 빈정거리는 대목 등은 좀 지나치다 싶다. 그럼에도 교사에 대한 비판이 새겨들을 만한 까닭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사 때문에 어떤 과목을 좋아하게도, 싫어하게도 되고 그것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기도 한다. 초등학교는 우리의 일평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집단 내에서의 실존적 경험의 실험장이다.

저자는 지난해 이 책을 출간할 때 자신의 아이들이 피해를 볼까봐 본명(게를린데 운페어작트)을 숨기고 가명을 썼다. 그러나 학교 선생이 저자의 뒷모습이 찍힌 잡지 사진을 들이대자 막내아이가 저도 모르게 “우리 엄만데” 하고 외치는 바람에 정체가 드러나게 됐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반성을 위해 학부모들에게, 그리고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원제 ‘Das Lehrerhasserbuch’.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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