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미국역사를 고발하다…‘미국 민중사 1, 2’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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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사 1, 2/하워드 진 글·유강은 옮김/1권 639쪽, 2권 606쪽·각 2만4800원·시울

미국인들은 ‘민중사’라는 제목부터 낯설 수 있다. 2억9500여만 명의 인구 중 4000만 명이 건강보험조차 들지 못한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전체 예산에서 복지비용 비율이 최하위권인 나라, 어느 도시든 홈리스(homeless)들이 넘쳐 나는 나라, 그럼에도 빈부 격차 문제가 정치권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는 나라, 그것이 오늘의 미국이다.

책장을 넘긴 미국인들은 곧 충격에 휩싸인다. 매년 10월 12일 콜럼버스 데이를 기념하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영웅적인 조상(백인들의)이 어떻게 원주민들을 도륙하고, 노예로 끌고 갔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읽어야 한다. “1495년 콜럼버스 일행은 대규모 노예사냥에 나섰다. 그들은 아라와크족 남자 여자 어린이 1500명을 스페인인들과 개들이 지키고 있는 우리 안으로 몰아넣은 뒤 500명을 골라 배에 실었다.…콜럼버스는 훗날 이렇게 기록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모든 노예를 계속 잡아 보냅시다.”

저자인 하워드 진은 놈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실천적 진보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그는 운동을 머릿속에서 그리는 강단 관념론자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1922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출생해 조선소 노동자를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층민 출신 지식인이다. 그가 미국의 역사를 콜럼버스와 유럽 지배자들의 눈에서 시작하지 않고 피지배 계급과 인종에서 출발한 것도 출생과 무관치 않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문명적으로 진보한 나라, 미국의 자긍심 아래 숨겨진 아픈 야만의 기억들을 철저히 끄집어낸다. 인디언의 시각에서 본 아메리카 대륙 발견, 흑인 노예의 관점에서 본 헌법제정, 뉴욕의 아일랜드인들이 본 남북전쟁, 방직공장 여성들이 본 산업주의 발흥, 할렘 흑인들의 눈에 비친 뉴딜, 쿠바인들의 눈에 비친 스페인-미국 전쟁 등.

단순히 과거뿐 아니라 베트남전과 최근의 이라크전까지 하워드 진은 일관되게 국경을 넘어 피해자의 시선으로 가해자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가해자의 살육이 문명의 진보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만일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 희생을 결정할 권리는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희생당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말을 빌려 역사 속에 발 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외친다.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이 할 일’이라고…. 원제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2003년)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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