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안에 관객을 포섭하라… 한국영화 ‘예고편’ 전쟁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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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폐공장 안, 칩을 수북이 쌓아놓고 카드 게임을 하는 남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는 카메라. 갑자기 장면이 전환되면서 총격전과 난투극이 벌어진다. 헬기에 쫓기며 돈 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남자. 우수에 젖은 표정의 주진모가 담배꽁초를 휙 던지면 자동차가 폭발한다. ‘5인의 프로가 인생의 한방을 노린다’는 카피가 뜨고 낮은 목소리가 깔린다. ‘두뇌유희 프로젝트-퍼즐’.》

감각적인 영상이 한 편의 CF, 아니 2분짜리 영화를 본 듯하다. 다음 달 14일 개봉하는 영화 ‘두뇌유희 프로젝트-퍼즐’의 티저 예고편. 이게 끝이 아니다. 5명의 주인공마다 각기 다른 버전의 티저 예고편이 있고 본 예고편까지 합치면 총 7종류나 된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8억 원인데 예고편 제작에만 2억8000만 원이 들었다. ‘맛보기’ 치고는 비싸다.

작년 말부터 충무로에선 연출 예고편, 즉 영화의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새로 촬영한 예고편이 대세다. 보통 본 예고편과는 별도의 티저 예고편으로 사용된다. 이는 한 해에 한국 영화가 100편 이상 개봉되면서 심화된 마케팅 경쟁의 산물이다. 예고편부터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 영화를 파는 ‘광고’

예고편 전문 회사 ‘하하하’의 최승원 감독은 “연출 예고편은 영화라는 상품을 하나의 콘셉트로 포장해 표현하는 광고”라고 정의했다. 그래서인지 CF 감독들이 많이 만든다.

‘퍼즐’의 예고편은 CF계의 스타 감독인 박명천 감독이 만들었다. 2박 3일 동안 경기 화성시 제부도와 경기 양평군의 폐공장에서 찍었다. 예고편의 장면들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예고편만을 위해 헬기를 띄우고 자동차도 폭파시켰다. 영화계 사람들이 “죽여주는 예고편만큼 영화가 받쳐 줄지 모두들 궁금해한다”고 말할 정도.

스타 CF감독인 채은석 감독은 올해 ‘비열한 거리’에 이어 9월 14일 개봉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2월 개봉 예정인 ‘미스터 로빈 꼬시기’의 예고편을 촬영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고 가장 본질적이면서 충격이 강한 것을 뽑아낸다”고 말했다. 스토리보다는 강한 이미지 전달에 주력하는 것. ‘하하하’가 만든 ‘거룩한 계보’(10월 개봉) 티저 예고편도 1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고 1억3000만 원이 든 ‘대작’이다.

새로 찍지는 못해도 적당히 연출을 가미한 예고편은 거의 필수. 9월 28일 개봉하는 ‘타짜’는 조승우 김혜수 등 배우가 화려한 점을 이용해 배우별로 다른 버전으로 영화를 편집한 뒤 컴퓨터그래픽을 곁들여 보완했다.

● 왜 예고편인가?

연출 예고편의 효시는 2000년 박명천 감독이 만든 ‘시월애’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 해에 몇 편씩 나오다가 작년부터 본격화됐다. 작년 10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연출 예고편의 대표적 성공 사례. 여러 커플의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자칫 산만할 수 있었지만 밝은 분위기의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들어 히트를 쳤다.

예고편 경쟁의 심화는 한국 영화의 급격한 제작 편수 증가와 관계 깊다. 많은 영화 가운데서 눈길을 끌어야 하기 때문. 예전엔 한두 달 전부터 마케팅을 시작했지만 요즘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보통 개봉 6개월에서 이르면 1년 전부터 ‘프리(pre) 마케팅’을 한다. 영화가 촬영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케팅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 경우 예고편을 따로 찍을 수밖에 없다. 온라인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들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싸이더스FNH 조윤미 마케팅 실장은 “티저 예고편이 말 그대로 관객의 호기심을 끌 정도여야지 영화와 차이가 커서 ‘속았다’는 느낌을 주거나 예고편 경쟁 때문에 마케팅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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