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남자 둘’…80년대 발라드와 90년대 댄스뮤직의 동거

  • 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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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대화는 이들의 인사에서 시작됐다.

“오, 일상! 어서 와.”

“아잉∼ 문세 형!”

“뭘 마실까…. 난 오렌지 주스.”

“엇, 나도 같은 거 생각했는데….”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 과도한 ‘애정’ 표현으로 서로를 반기는 두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팔에 돋은 닭살을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15년의 나이 차를 극복한 진짜 커플인가? 아니다.

이들은 1980년대 발라드 1세대 가수 이문세(47)와 ‘영턱스 클럽’, ‘쿨’, 이승철, 김건모 등의 가수와 함께 1990년대 후반 댄스뮤직 황금기를 이끈 프로듀서 윤일상(32)이다.》

▽이문세=노땅과 신땅의 만남이라고 할까? 우리가 만난다니까 주위 사람들이 더 놀라던데요. 그래서 ‘어떻게 폼 나게 만날까’ 걱정했답니다. 업계에서는 둘 다 선수로 알려졌으니….

이들은 다음 달 10일 발표되는 프로젝트 앨범 ‘이문세 소품집-발칙한 여자들’의 가수와 프로듀서로 만난 사이. 그간 이문세는 작곡가 이영훈과 함께 조신한 발라드를 만들었고 윤일상은 신세대 가수들과 댄스뮤직을 논했으니 ‘노는 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찰떡궁합이었다.

▽윤일상=아휴, 제가 문세 형님을 짝사랑한 거죠. 고교 시절부터 우상이었어요. 부족한 용돈 아껴 가며 형님 음반을 샀죠. 오늘도 여동생한테 ‘문세 형님이랑 인터뷰 한다’고 하니 ‘오빠 좋겠네’라고 말하더군요.

이들의 만남은 두 달 전부터 시작됐다. 4년 만의 공백을 깨고 15집 준비에 들어갔던 이문세에게 윤일상이 찾아왔다. 거절당할 각오도 했다. 이문세는 “음악도 좋지만 일단 술부터 마시자”고 했다.

▽이=일상과의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죠. 박자 하나, 호흡 한 번까지 성형수술받은 거나 다름없어요.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로듀서여서 그런지 내가 노래하다 좀 미심쩍다고 느끼면 신기하게도 노래를 바로 자르더군요. 마음이 통한 거죠.

▽윤=제가 아무리 까다로워도 형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앞에선 “깨갱”하죠(웃음). 제가 뭔 주장을 펼쳐도 형님이 ‘그럼 너 편한 대로 해 봐’라고 하시면 왜 그렇게 떨리고 두렵던지….

이번 음반은 총 5곡이 수록될 미니 앨범. ‘발칙한 여성들’이란 부제 때문에 자연스레 화제는 ‘여성’으로 넘어갔다.

“발칙한 여성이 매력적이지 않나요?” “그래, 발칙한 건 센스가 있다는 소리잖아.”

가장 발칙한 추억을 묻자 둘은 함께 “이번 음반 작업”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타이틀 곡 ‘알 수 없는 인생’은 이문세 스타일의 편안함과 윤일상 특유의 톡톡 튀는 감성이 묻어나는 보사노바 곡. 여기에 느린 발라드 ‘모르나요’와 ‘세월’은 윤일상의 나이답지 않은 가사와 이문세의 복고적인 창법이 마치 ‘안락의자’처럼 귀를 편하게 한다.

▽윤=그동안 다작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스타일이 물리더라고요. ‘윤일상 표 댄스뮤직’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이번엔 저를 많이 버리고 형님과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이=10년 전만 해도 감동을 주는 노래가 있었지만 지금은 감각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가요계가 변질됐죠. 하지만 음악의 고유성은 있다고 믿어요. 날 위해 살고 있는 못생긴 마누라, 일 못했다고 혼내는 직장 상사… 그런 일상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술 한잔 마시고 노래방에서 혼자 눈물 흘리며 부를 수 있는…. 지금 10대들에게는 촌스러운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기자가 이들에게 “주말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듣는 음악”같다고 하니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 음반의 데모CD(시험용 음반) 제목이 바로 ‘선데이 모닝’이었기 때문. 잠시 쉴 수 있는 음악을 담았다며 껄껄 웃는 이들의 얼굴을 보니 문득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들, 닭살의 결정타를 날렸다.

“우리, 이 참에 사귈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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