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 소장 “전공은 미래과학이지만 사실은 컴맹”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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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거보다 미래에 관심이 많아요.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는 일처럼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정신노동도 흔치 않을 겁니다.”

과학전문 저술가 이인식(61·사진) 과학문화연구소 소장이 20년 집필활동을 총결산한 책 ‘미래교양사전’(갤리온)을 펴냈다.

책에는 과학기술을 비롯해 경제 문화 환경 군사 섹슈얼리티 초자연현상 등 7대 부문을 중심으로 369개의 표제어와 해설이 실렸다. ‘블로그’ ‘지구 온난화’처럼 평범한 말부터 ‘밈플렉스’ ‘테라포밍’처럼 낯선 용어까지 가로지른다. 미래예측서라기보다 생활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상식사전이라 할 만하다.

이 소장이 200자 원고지 3000장 분량의 원고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두 달. 하루에 50장씩 쓴 셈이다. 게다가 그는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쓴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냐고 묻자 그는 “20년간 쌓아온 것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미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미래신문’처럼 미래와 관련된 책을 낼 때마다 축적한 데이터를 모아놓은 파일노트 30권과 여러 방면에 걸쳐 10여 년간 써온 칼럼이 그의 무기다.

그는 “이 책에 소개된 키워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특히 “구닥다리 이론 같지만 앞으로 사회에서 중요해질 키워드를 미래와 연결시킨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런 키워드로 이 소장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천년왕국주의, 유토피아주의를 꼽았다. 아나키즘의 경우 흔히 ‘죽은 사상’ 취급을 받지만 인간관계가 수평적으로 연결되는 21세기 네트워크 사회에서 아나키즘의 목표에 어느 정도 다가선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미 환경 여성 분야에서 에코아나키즘, 아나코페미니즘의 흐름이 있고 사이버공간에서도 권력의 개입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 운동이 진행 중이다. 그는 이 같은 흐름이 21세기 초반에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성반도체 최연소부장 경력에 과학기술관련 칼럼을 숱하게 쓰면서도 이 소장은 정작 ‘기계치’다. 휴대전화, 운전면허, 신용카드도 없다.

“반(反)문명은 아니고 그냥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컴퓨터를 멀리 하는 건 원고지에 쓱쓱 쓰고 고무지우개로 닦고 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는 거고….”

그가 원고지에 쓴 글을 10장당 5000원씩 받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저임금 노동(?)’을 군말 없이 해 주는 아내 덕택에 전문 저술가, 칼럼니스트의 생활도 가능했다. 이 소장은 1987년 첫 책 ‘하이테크 혁명’ 이후 16권의 책을 썼고, 올해 2월 월간 과학동아 창간 20주년 기념식에서 최다 기고자로 감사패를 받았다.

‘미래교양사전’으로 과학관련 저술 이력에 방점 하나를 찍은 그는 요즘 미래, 문학, 과학을 결합한 문명 비평 책을 집필 중이다. “고전 소설을 보면 과학기술을 다룬 내용이 많은데 이를 문명비평적 관점,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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