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배고픔의 자서전

  • 입력 2006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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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 사진 제공 열린책들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 사진 제공 열린책들
◇배고픔의 자서전/아멜리 노통브 지음·전미연 옮김/219쪽·8500원·열린책들

오세아니아의 섬 바누아투(실제로 있는 섬이다)는 풍요롭지만 고립된 곳이다. 부족한 것도, 동시에 식욕도, 배고픔도 없는 그곳의 주민들은 다정다감하고 공손하다. 하지만 무기력하며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끝없이 유유자적하며, 뭔가에 대한 추구가 빠져 있는 삶이다.

소설적 묘사는 여기까지다. 바누아투는 작가와 반대되는 존재의 지리적 표현일 뿐이다. 도무지 식욕이 없는 바누아투 사람들과 달리 작가는 ‘배고픔이라는 유일무이한 힘으로 작동’하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배고픔이란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다.

벨기에 출신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는 국내에 열혈 독자 군을 거느린 몇 안 되는 외국 작가 중 한 명. 그녀의 열세 번째 소설인 이 책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에 걸쳐 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 책은 굶주린 자, 즉 무언가를 찾는 사람의 성장기이다. 작가가 즐겨 써온 자전적 성장소설의 완결편 같기도 하다. 전작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과 같은 시점에서 시작해 ‘사랑의 파괴’를 거쳐 성인이 된 이후의 이야기인 ‘두려움과 떨림’ 직전에 끝난다.

줄거리랄 것도 없이 서너 살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도 작가의 신랄한 말투,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눈은 여전하다.

끊임없이 초콜릿에, 물에, 인간에, 사랑에 대해 배가 고팠던 작가는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를 오가는 격렬한 성장기를 보냈고, 배고픔이 있던 자리에서 쾌락을 촉발하기 위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책읽기,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됐다.

속내를 들여다보는 그 독설이라니…. 자카르타 나환자 수용소에 봉사하겠다고 온 프랑스 수녀 두 명이 끔찍할 정도로 살이 찐 것을 보며 작가는 싸늘하게 일갈한다.

‘이제 너도 알겠지, 스스로에게 진짜 어떤 문제가 있지 않고는 선의를 위해 통째로 인생을 바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노통브의 책이 늘 그렇듯 순식간에 읽힌다. 열혈 독자에겐 좀 더 가깝게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노통브를 모르는 독자에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입문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의 내부에만 탐닉하려는 것일까.

원제 ‘La Biographie de la Faim’(2004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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