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숨은뜻 관찰하는 능력 생겨…‘한시이야기’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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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이야기/정민 지음/225쪽·9000원/보림

이 책의 한 대목을 보자. 중국 송나라의 휘종은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 날 그림 대회를 연 휘종이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라는 제목을 주었다.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고 그들의 그림을 본 황제는 내내 불만에 차 있었다.

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냈다. 그의 그림에서 절의 풍경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물동이를 인 스님 한 분이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을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림을 내려다보던 황제는 아주 흡족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이 화가에게 1등을 주겠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에게 황제는 설명을 한다. 황제의 요구는 산속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절이었다. 다른 화가들이 모두 절의 지붕이나 탑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할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새로운 시각을 택했다. 비록 절이 보이지 않지만 물 길러 나온 스님이 있다면 근처에 절이 있다는 것은 뻔한 이치다. 산이 깊어 절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황제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그림과 마찬가지로 시도 말하지 않으면서 말을 이뤄내는 특별한 힘이 있다. 다만 시 속에 담긴 시인의 의도를 읽기 위해서는 숨은 그림을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곰곰이 따져보고 찬찬히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런 연습과 훈련을 거치면 살아 있는 그림과 죽은 그림의 차이를 알게 되고, 진짜 시와 가짜 시를 가려낼 수 있게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과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시도 어려운데 한시라니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한시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란 쉽고 재미있으며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갈래다. 더욱이 그 재미 속에는 향기가 있고, 여운이 있으며, 우리의 내면을 꽉 채우는 충만한 기쁨이 있다. 저자는 오래된 것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지혜를 배우라고 한다. 짧고 간결한 말 속에 담긴 크고 강렬한 울림은 현대의 지식과 정보가 줄 수 없는 한시만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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