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5>望秋先零(망추선령)

  • 입력 2006년 2월 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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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나무는 단풍으로 물든다. 나무는 단풍을 붙들고 찬바람을 견딘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는 그때서야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을 준비한다. 그러나 가을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미리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는 없다.

‘望秋先零(망추선령)’은 ‘가을이 멀리에서 오는 것을 보고, 잎이 미리 떨어지다’라는 의미로서, 의지가 약하여 미리 겁을 먹고 나약해지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望(망)’은 ‘보다’라는 뜻이지만, 대개는 먼 곳을 바라보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그러므로 ‘希望(희망)’은 당장은 아닐지라도 이후로는 이루어질 먼 가능성을 보는 것이며, ‘前望(전망)’은 눈앞에 멀리 보이는 풍경을 나타낸다. 요즈음 건물을 지을 때 흔히 문제가 되는 ‘眺望權(조망권)’은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권리’라는 말이다. ‘眺(조)’는 ‘잘 살펴보다’라는 뜻이다.

‘秋(추)’는 ‘가을’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禾(벼·화)’와 ‘火(불·화)’가 합쳐진 한자로서, ‘벼를 불에 익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벼는 곧 쌀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秋’는 곡식을 불에 익힌 밥이라는 뜻이 된다.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추수를 하는 가을이다. 그러므로 ‘秋’는 ‘가을’이라는 뜻을 갖는다.

‘先(선)’은 ‘먼저, 앞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先生(선생)’은 ‘세상에 먼저 태어난 사람’이고, 先祖(선조)는 ‘먼저 살았던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零(령)’은 ‘비가 소리 없이 떨어지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변하여 이슬이나 나뭇잎이 소리 없이 떨어지는 것도 나타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떨어지면 남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零(영)’은 숫자 ‘영(0)’을 뜻하기도 한다. ‘零落(영락)’은 ‘남김없이 떨어지다’라는 뜻으로서 사람의 권세나, 한 집안 혹은 나라의 운명이 쇠락한 상황을 나타낸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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