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창조론자들, 자연과학박물관 찾아 진화론 공격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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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생물학 교수인 르노 더키(여) 박사는 최근 미국 뉴욕 주의 지구박물관에서 안내인으로 자원봉사를 하던 중 7, 8명의 관람객과 마주쳤다. 이들은 박물관의 진화 관련 전시물에 대해 강력한 반론을 펼쳤다. 거의 시비조였다.

이들은 화석 연대측정 기법에서부터 갈수록 우주가 무질서 상태로 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이르기까지 기관총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더키 박사가 정신없이 답변을 하다 보니 45분이 훌쩍 지나갔다. 그는 “좀 쉬었다 하자”고 이들에게 요청해야만 했다.

22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과학 또는 자연사 박물관들이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가 맞붙어 불꽃을 튀기는 격전장이 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 이후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창조론 가이드 동원=미 관광회사인 ‘BC투어’는 콜로라도의 덴버 자연사박물관 관람객들에게 가이드를 딸려 보낸다. 관람객들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성경’에 따라 전시물을 설명하는 ‘창조론 가이드’의 말을 경청한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일부 관람객은 진화와 관련된 박물관 측의 설명에 일단 귀는 기울이기도 한다. 물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뚜렷하다. 하지만 일부 관람객은 지구의 나이가 40억 년이 넘는다는 설명에 “성경 말씀과 다르다”며 거칠게 항의한다.

뉴욕 주 지구박물관의 워런 앨먼 관장은 “박물관 소속 안내인을 괴롭히고 위협하려는 목적으로 찾아온 창조론 관람객들도 있다”고 말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앨먼 관장은 8월부터 박물관 가이드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설명회를 열었다. 창조론 관람객들의 공세뿐만 아니라 인간이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믿는 미국인이 54%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자극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이후 미 전역에서 박물관 안내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교육시키는 설명회가 크게 늘어났다고 전했다.

설명회 강사들의 요령은 ‘몸을 사리지 말고 단호하게 맞서라’는 말로 압축된다. 과학 및 자연사 박물관 측은 과학법칙을 준수한다고 분명하게 설명하라고 강사들에게 요구한다. 끝내 상황이 불리하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내빼는 ‘36계 전략’도 쓰라고 알려 준다.

곧 사상 최대 규모의 ‘다윈 전시회’를 개최하는 미 자연사박물관 측도 직원들에게 ‘먼저 관람객들의 주장을 들은 뒤 과학과 증거에 관해 설명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유진 스콧 전미과학연구소장은 “관람객들이 선한 기독교 창조론자나 악한 무신론 진화론자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는 태도를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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