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1>발레리나의 가슴은 왜 작을까?

  • 입력 2005년 7월 9일 03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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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의 가슴은 왜 ‘절벽’일까?

발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법한 의문. ‘절벽 가슴’은 대부분의 발레리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직업적 신체 특징’이다.

얼마나 작을까? 브래지어 사이즈를 물어봤다. “(가장 작은) A컵을 해도 빈 공간이 많이 남아요. 가슴을 가운데로 모아서 커보이도록 하는 ‘기능성 브라’를 하고 싶어도 모아질 가슴이 아예 없으니 못 입죠.”(키 166cm, 몸무게 46kg인 한 발레리나)

깡마른 발레리나들의 몸에서는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지방 덩어리인 가슴 역시 발레리나에게는 군살인 걸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의 박용우 교수는 “발레리나들의 가슴이 작은 이유는 운동량은 많은데 다이어트까지 하니 지방이 정상적으로 필요한 수준보다 많이 부족해 가슴이 될 만큼 쌓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어릴 때부터 가슴이 발달하지 않은 발레리나들은 나중에 발레를 그만두고 살이 찌더라도 갑자기 가슴이 생기는 게 아니라 몸 전체에 지방이 붙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글래머’ 발레리나도 있을까?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활동했던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강예나 씨는 “유명한 발레리나 중 줄리 켄트처럼 완전 ‘절벽 가슴’도 있지만 외국 톱 발레리나의 5% 정도는 완전히 풀컵(full-cup) 사이즈의 가슴을 가졌다. 특히 라틴계 발레리나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요즘은 큰 가슴을 더 예쁘게 보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절벽 가슴’이 대세. 많은 발레리나들은 “무대에서 출렁이는 가슴이 눈에 거슬린다”고 말한다. 클래식 발레의 경우 요정같이 사뿐한 몸짓으로 지고지순한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큰 가슴은 발레리나를 천상의 요정이 아닌 세속의 여인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사실, 육감적으로 가슴을 출렁이며 춤추는 가녀린 백조들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가슴이 큰 발레리나 중에는 비닐 랩으로 가슴을 감아 납작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가슴이 큰 발레리나가 유리한 작품도 있다. 발레리나가 비키니 스타일의 상의를 입어야 하는 ‘라 바야데르’가 대표적인 예.

무대 위에서는 ‘절벽 가슴’을 당당히 내밀어도, 무대에서 내려오면 남몰래 고민한다. 20대 중반의 한 발레리나는 “소개팅에 나갈 때는 꼭 ‘뽕브라’를 한다”며 “남자 친구가 생기면 다들 가슴에 굉장히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 무대를 떠난 발레리나 중에는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현역 발레리나는 “의사에게 상담했더니 가슴 수술도 어느 정도 사이즈가 돼야 수술한 티가 나지 않는데 나는 가슴이 너무 없으니 하지 않는 게 낫다더라”고 털어놓았다.

섹시한 ‘몸짱’이 각광받는 시대, ‘이상적인 여성의 몸’과 ‘이상적인 발레리나의 몸’의 간격만큼 발레리나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이 기사의 기획 및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관(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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