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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6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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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목간에는 논어(論語)의 내용이 기록돼 있어 한반도에 유학이 들어온 시기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100∼200년 앞선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계양산성을 발굴해 온 선문대 고고연구소는 “계양산성의 동문(東門) 터 집수정(集水井·우물) 바닥에서 초기 한성(漢城) 백제시대(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인 3∼4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국내 최고(最古)의 목간을 찾아냈다”고 27일 발표했다.
이 목간은 다섯 면에 먹으로 글씨를 쓴 오각 목간. 목간의 위아래 부분은 일부가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길이 13.8cm.
목간 한 면에는 ‘君子者 斯焉取斯(군자자 사언취사)’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형구 선문대 고고연구소장은 이 구절이 ‘논어’ 제5편 공야장(公冶長)에 나오는 ‘子謂 子賤 君子哉 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자위 자천 군자재 약인 노무군자자 사언취사·공자가 자천에 대해 말하기를 ‘그 같은 사람은 참으로 군자다. 만일 노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그가 어떻게 그런 학덕을 터득했겠는가’라고 했다)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에서는 이 밖에도 길이 24cm나 되는 거북 등껍질을 비롯해 기와류, 목재류, 패각류 등이 출토됐으며 계양산성이 한성백제 시대에 처음 축조됐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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