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과학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하며 살아갈까

  • 입력 2005년 4월 29일 17시 13분


코멘트
햇빛 잘 드는 언덕배기에 놓인 완두콩밭에 흰색과 자줏빛의 꽃들이 가득 피었고, 시간이 지나 꽃이 떨어지자 그 자리엔 노랗고 푸른 완두콩이 가득 열렸다. 지나가던 한 시인은 이 광경을 보고 꽃들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대지의 후덕함을 찬미하는 시를 지었고, 성직자는 우리에게 배불리 먹일 양식을 내려주신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콩밭 주인은 소출이 늘어 송아지를 한 마리 더 살 꿈에 부풀었고, 봄철 내내 콩밭 가느라 허리가 휜 황소는 주인이 완두콩을 넣어 푸짐하게 쑤어준 쇠죽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런데 과연 이 사람들 옆에서 먹을 것도, 노래할 것도, 내다 팔 것도 아니면서 열심히 콩깍지를 관찰하고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이 사람은 완두콩 꽃과 열매를 세심하게 관찰하더니 노트에 뭔가 적기 시작한다. 7년이 넘도록 해마다 완두콩이 열리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그는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노트 뭉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이름은 그레고리 멘델, 유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완두콩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관찰한 결과, 현대 유전학의 기초가 된 ‘유전의 법칙’을 알아낸 것이다. 당신이라면 완두콩을 보고 이런 사실을 알아낼 자신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견 ‘특이해 보이는’ 이 과학자라는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것들을 풀어내며 살아가는 것일까. 과학자들도 이에 대해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생물학과 철학이라는 쉽지 않은 학문에서 두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파스칼 누벨 박사는 ‘과학을 사랑하는 기술’(울력)을 통해 과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과학과 사랑에 빠져 인생을 거는가를 관조적인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는 과학자에게 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지평을 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과학자가 어떤 실험이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실험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답하는 방식에서 맞아떨어지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멋진 사고(思考) 말이다. 사실 과학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르긴 해도 누벨 박사가 이야기하는 ‘무언가’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과학자의 길을 걷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이렇게 누벨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과학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지만 여전히 그 ‘무언가’를 도통 모르겠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공감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직접 물어 보면 될 터이니. ‘과학자들에게 묻고 싶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인간과 삶에 관한 질문들’(황금부엉이)처럼 말이다. 수전 그린필드나 존 설스턴 같은, 이름만으로도 단어 하나하나에 믿음을 심어주는 세계적 석학들이 신과 우주, 시간과 의식, 유전과 환경, 여러 가지 차별 등 모두 스무 가지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책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자신에게 반문해 보자. 나는 과연 이 주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이은희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저술가·‘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저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