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의 역사 교과서’…평화-공존으로 가는 길

  • 입력 2005년 3월 25일 16시 52분


일본과 달리 독일은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2000년 베를린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기념관 준공식에서 당시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오른쪽)과 볼프강 티어제 하원의장(왼쪽)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운데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동아일보 자료사진
일본과 달리 독일은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2000년 베를린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기념관 준공식에서 당시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오른쪽)과 볼프강 티어제 하원의장(왼쪽)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운데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계의 역사 교과서/이시와타 노부오, 고시다 다카시 편저·양억관 옮김/361쪽·1만3000원·작가정신

일본 우익이 지원하는 후소샤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가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등 심각한 왜곡으로 국제 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교과서의 집필을 주도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의 역사를 간섭해서는 안 되며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침략을 부정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일본에 이 같은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 책은 후소샤 교과서의 왜곡된 역사관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의 대학 강사들이 만든 책이다.

책은 일본 한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미국 등 11개국의 역사 교과서를 비교한 뒤 역사 교과서의 지향점은 공존과 평화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편저자인 이시와타 노부오(도쿄대 교육학부 강사) 씨는 후소샤 교과서 외에 일본 역사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그는 “중학교 교과서는 단선형 일본사의 전형으로 천황이 고대부터 일관되게 일본의 역사 위에 군림해 왔다는 역사상을 주입해 왔다”며 “단일민족설에 기초한 이런 단선형 역사는 다른 민족과의 공존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이시와타 씨는 특히 이 교과서는 전쟁 책임에 대한 기술이 명확하지 않고 일본인이 중국에서 얼마나 잔혹한 행동을 저질렀는지 등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고시다 다카시(가쿠슈인대 겸임 강사) 씨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해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본 근현대사의 침략적 성격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1995년 전후로 우파 사상가들이 ‘일본 민족주의’를 내걸며 겨우 바르게 방향을 잡기 시작한 역사 인식을 방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본의 역사 인식 수준에 비해 독일의 역사 교과서는 ‘세계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쟁 범죄의 책임을 가능한 한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 독일의 교과서는 히틀러에 대한 열광적 지지와 협력이 없었다면 나치가 만행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나치와 당시의 국민을 공범으로 본다. 유대인 학살도 당시 국민의 의식에 박혀 있던 반유대인 감정에 중점을 두고 기술하고 있다.

미국 역사 교과서는 중립성을 지키되 토론 위주의 수업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미국이 공산주의자의 침략으로부터 베트남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했다고 기술하지만, 미군이 마을 주민을 몰살한 사건을 기록한 교과서도 있다.

그러면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비쳤을까. 이시와타 씨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 사관으로 인해 객관화하기 어렵고 불편한 역사를 숨기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양국의 어린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교류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책은 식민지배에 대해 자기 비판적 내용을 덧붙이는 영국, 일본군의 잔인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중국 등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교과서 절대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공존을 위한 보편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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